재미있는전시이야기

 

 

 

서용선, 그림과 글이 교차하는 풍경

 

 

서용선, <철암로>, 2005, Acrylic on  Canvas, 200 x 250cm.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정면으로 배치된 탄광마을의 풍경이 보인다. 눈 덮인 산은 잎을 모두 떨군 갈색의 나무들을 입고 건물의 배경을 이룬다. 60~70년대에는 성황을 이루었을 마을은 세월의 두께를 안고 호젓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화면에 가득 들어선 건물의 형태는 비교적 단조롭지만 간판의 색깔과 여러 가지 이름 때문에 눈길을 끈다. 마치 건물이 아니라 간판이 대신 건물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에도 철암마을의 이 간판들은 그림의 모습처럼 남아 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 색은 바랐으나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간판의 이름은 다양한 지역에서 이 태백의 탄광마을로 모여들었던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광산일을 하러 경상도에서 사북으로 올라와 경상도 지명인 봉화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어디에서나 인기 상호인 ‘한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도의 세련됨과 최신식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1950년대 말에 개봉되었던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제목을 상기시키는 ‘젊음의 양지’라는 단란주점은 60-70년대 우리의 대중문화를 엿보게 한다. 간판의 글씨들은 당시의 삶과 문화를 드러내며 이 마을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자연환경인 하늘과 산은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에 밀려 뒤로 물러나 있고 마을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든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도시풍경을 자주 그린다. 그것은 자연환경과 달리 우리의 삶과 문화를 담은 사회적 환경이다. 도시의 풍경 속에는 현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담겨있다. 작가에  따르면 ‘그림 그리는 몸’인 작가의 신체는 우리의 현실과 그것을 ‘기억하는 몸’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몸은 현실 즉 환경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기억하는 몸이다. 시간의 흐름은 역사를 만들었고 과거에 대한 기억들은 우리의 몸에 저장되어 있다. 그 몸은 현실을 판단하는 ‘의지의 힘’으로 시간 즉 역사와 지금의 현실을 헤쳐 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낸 그 역사는 몸의 기억 때문이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그림 그리기는 이러한 몸의 물질적 현실화이다. 그러고 보면 ‘몸’은 시간의 흐름 속에 개념화되어 기억에 저장되는 역사를 이해하고 지금의 현실을 끊임없이 체험한 후 자신의 몸의 기억 속에서 다시 해석해내는 매개체이자 주체이다. 과거의 역사는 시간 개념을 배제할 때 현재이고 미래일 수 있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 현재로 머물며 경험한다. 인간은 이러한 이해와 경험을 표현하고자하는 원초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그림그리기는 그가 공명하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것이다. 그는 “그림은 생각이 머문 것이다.”라고 했다. 

 

서용선의 풍경화에서 간판의 글들은 그려진 풍경을 설명한다. 그의 작품을 볼 때면 그림으로 표현한 글을 읽는 듯하다. 작가는 특히 역사적인 내용을 많이 그린다. 그는 역사적 존재가 있었던 과거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재고하게 만드는 또 다른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어떤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하나의 현실에 대한 공감과 그 사실을 바라볼 때의 태도를 나타낸다. 

 

우리가 서용선의 작품에 이끌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색채이다. 우리는 그의 사유세계를 강렬한 색채를 통해서도 만난다. 역사화를 즐겨 그리는 작가에게 그 강렬한 원색이 전통적인 색채들에서 온 것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작가는 물론 무속신앙이나 전통색채의 영향도 있겠지만 의외로 무채색을 지향하는 우리의 민족성향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드러나길 주저하며 전체 속에 묻혀 있고자하는 성질은 각 존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인물의 얼굴을 붉게 표현하는 것이 과하지 않은가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표현하는 존재의 얼굴을 그 색채가 잘 드러내 주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 색채는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색채는 그려진 대상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강한 전달력을 지닌다.

 

서용선은 1951년생이다. 20년간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교수로 있으면서 작업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아쉬웠던 것인지 정년을 훨씬 앞서 은퇴를 하고 전업 작가로서의 활동시간을 가졌다. 은퇴 이후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4년 이중섭 미술상, 2016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로 선정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숨을 쉬듯 쉬지 않고 작업해 오고 있다. 그는 세상이 부여한 권위와는 상관없는 듯 늘 초심자의 순수한 태도를 견지한다. 그것은 변함없는 자연의 그것과도 닮은 자연스러움으로 와 닿는다. 그래서 그가 가진 시선의 탁월함이 높고도 의미 있는 모양이다. 

 

글_ 김언정(고양문화재단 미술관 책임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