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삽니다 –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날들, 이미경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도 사먹을 수 있던 과자가 많았던 97년, 작가 이미경은 아이를 위해 이사한 경기도 광주의 한 동네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로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멍가게를 그려내기를 20년, 그녀가 그려낸 구멍가게 작품들은 벌써 250여점에 달한다.
한국의 한 작가가 전국 동네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그려낸 동네 구멍가게들의 모습들은 영국 BBC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날들> 이라는 책은 영국 BBC가 극찬한 이미경 작가의 구멍가게 신작 14점을 포함한 그녀의 작품을 수록, 책 크기를 키우고 원화에 가까운 색감과 펜 선을 살려내었다.
그는 왜 구멍가게를 그리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의 그림을 주목하는가? 그의 그림이 우리를 구멍가게에 담긴 추억 속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림을 처음 그리던 때를 생각하며
“1997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리에서 살 때였어요. 벚꽃처럼 눈이 흩뿌리던 날 오랜만에 찾은 구멍가게가 문득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적갈색의 슬레이트 지붕은 오묘한 빛을 발하고 유리창에 무심히 써내려간 ‘음료수’란 붉은색 글씨가 시선을 유혹했습니다. 손으로 뚝딱거리며 만든 것 같은 벤치는 넉넉히 쉴 자리를 제공하고, 먼 데를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눈에서 삶의 혜안이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 가게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뛰면서 즐겁고 행복했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의 구멍가게 그림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가게의 정면을 그려냈지만, 가게 안에는 부채를 부치며 앉아있을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있을 것 같고, 지금이라도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뒤지며 쭈쭈바를 물고 나올 어린이들의 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중심이 되는 건물을 종이의 정 중앙에 그려내고, 자잘한 사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아기자기한느낌을 살리고, 날카로운 선을 중첩시켜, 더더욱 촘촘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처음엔 가게를 그리는 데에만 집중하던 그의 그림도 어느샌가 그 가게의 계절과 변화를 모두 담아내기 위해 가게 옆 나무의 변화에 대해서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가 담아내는 구멍가게들은 단순한 가게의 묘사가 아니다. 그림 안에 실제 구멍가게가 주는 따뜻함과 다정함을 담아내고 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조금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어 붓이 아닌 펜을 택했다고 한다.
영국 BBC는 이미경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마트’나 ‘슈퍼’로 불리는 곳(BBC는 convenience store라고 표현했다)에선 화장지, 라면, 우유, 소주,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모든 것을 판매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매체는 구멍가게의 일부처럼 등장하는 나무가 작품의 공통된 주제라며 “한국의 번화한 도시와 차분한 대조를 이룬다”고 분석했다.
구멍가게는 한국 특유의 정서가 완벽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는 구멍가게의 이러한 특성이 외국인들에게는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외국인이 그녀에게 그 그림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는 모르지만 그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그 따뜻한 느낌이 느껴진다고 말해주었을 때, 그녀는 구멍가게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도 이 그림을 통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향수가 존재함을 확신했다.
한 때는 동네마다 없는 곳이 없었던 구멍가게는 이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가 그려낸 구멍가게들 중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다.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에 도로가 들어서고, 구멍가게 옆을 지키던 평상과 고목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는 구멍가게가 온전히 우리 곁을 떠나기 전에 그림으로 남겨 그 옛날의 느낌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만 발견해도 문방구로, 가게로 달려가던 우리의 어린 시절은 모두 그녀의 구멍가게 그림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글 박유진- 고양문화재단 어시스턴트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