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전시이야기

 

 

 

 

흑과 백 사이에서, 민병헌 

 

 

 

 

고양문화재단 큐레이터 이지윤

 

 

 

디지털 카메라와 여러 컴퓨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만을 고집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폭포, 나무, 잡초, 강, 안개 그리고 눈 덮인 설원 등 우리 주위의 낯익은 자연을 흑백의 색채로 다시 탄생시키는 작가 민병헌이다.

 

 

 

 

민병헌은 1970년대 말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흑백사진이 가장 진보한 카메라 기술이었다. 그는 지금도 촬영부터 필름 인화까지 그 때 그 방식대로 모두 자신의 손을 거쳐 이뤄낸다.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작은 뷰 파인더를 들여다 보는 일은 그를 호기심 많은 소년으로 탈바꿈시키고,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품고 돌아오는 길은 연인의 선물을 안고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꾼이다.

 

 

지금도 아날로그 필름에 매력을 느끼고 작업을 하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필름 사진을 찍으려면 구식 카메라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필름이며 현상 재료를 구하는 일도 어렵고, 인화지의 선택의 폭도 좁아 쉽지가 않다. 이 고단한 일을 민병헌이 여전히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육 남매 중에 막내 아들로 자란 그는 우수한 성적을 내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유독 말썽꾼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린 시절 열등감과 소외감을 많이 느끼며 자랐다. 카메라의 ‘뷰 파인더’는 그의 그 장난끼 가득한 호기심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고, 적막이 흐르는 어두운 ‘암실’은 평화로운 세계를 선사했다. 그 어떤 타인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 없이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암실은 작가에게 도피처 이자 안식처였던 것이다.

 

민병헌은 스스로를 개성이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진 작업도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것이고, 하루의 스물 네 시간을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고 싶다고 말이다. 그의 작업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기 위해 하는 작업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위해 하는 작업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에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에 구체적이거나 시적인 제목이란 없다. 그저 자신의 작품 시리즈의 구분과 숫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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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헌의 사진은 폭포 소리마저 우아하고 느껴질 만큼 분위기 있는 감성을 담고 있다.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당시 기분은 어떠했는지 등 셔터가 포착한 그 순간을 둘러싼 모든 것,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다양한 무엇들이 예민하게 살아나 흑과 백의 미묘한 차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혹여 무엇을 찍은 것이냐고? 작가가 느낀 그것은 무엇이냐고 묻지는 말아 주시길… 

작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를 납득시키고자 하지 않기에, 역시 보는 이의 상상력에 선을 긋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한 작가처럼, 우리들도 그저 자유롭게 네모난 창 너머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항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민병헌 (Min ByungH)

1955년 서울 출생, 

1984년 ‘별 거 아닌 풍경’ 으로 첫 번째 개인전 개최

이후 국내 및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서 활동

사진집 별거 아닌 풍경(1987), 눈(1991), 잡초(2006) SNOWLAND(2007), DEEP FOG(2011), WATERFALL(2011), 민병헌 사진집 누드, 강(2013), 잔설(2014), 물가(201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