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전시이야기

[신화와 전설] 전시를 기획하며 – Section1. 잃어버린 세계로의 여행

전시의 구성은 세 개의 섹션으로 크게 나뉩니다. 우선 1섹션은 '신화와 전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는 장입니다. 신화 역시 인간의 삶처럼 순환의 구조를 갖습니다. 우주창조와 기원의 신화에서 시작하며 영웅의 탄생과 모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을 이롭게 합니다. 그리고 재생을 위한 종말로 새로운 창조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 섹션에는 4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윤정희는 가는 철사를 이용해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생명의 형상을 만듭니다. 새로운 생명의 출발이 그러하듯 연약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나, 철사는 근기와 강인한 생명력을 내포합니다. 
우주창조 이후 생명의 시작을 연상시키는 작은 세포들은 생명체의 구조적 본성처럼 오랜 손놀림으로 만들어나간 중첩의 결과물입니다. 여백을 지닌 공간 속에 형성된 씨앗구조는 존재의 원형적 기질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그 형태 위에 떨어지는 빛은 추상적이면서도 생명창조의 시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어서 카라 워커의 작품이 넓은 벽면을 특유의 실루엣 그림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워커의 예술은 주로 인종, 젠더, 성적 취향, 정체성에 관해 탐구합니다. 그는 선악의 흑백논리가 갖는 허점을 명백히 하면서, 오히려 집단의식의 폭력성이 뿌리깊게 의식을 장악한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워커는 갈등의 지속성이나 인종차별을 집단의식이 만들어낸 정체성으로 봅니다. 이 실루엣을 이용한 그림은 19세기 미국 고급예술에 대비되는 저급예술의 대표적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니그로'라 불리던 작가가 속한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는 단지 실루엣만으로 이루어진 형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것들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집단 의식과 연결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축적된 선입견이 삶의 많은 부분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워커의 작품은 삶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놓인 우리 모두의 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과 인간의 중간 존재인 영웅처럼, 정신과 육체의 중간에서 합당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우리의 과제는 작가로 하여금 집단의식을 통한 정체성을 반문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성배를 발견하도록 제안합니다.

예술가는 창작을 통해 일정한 순간을 작품 속에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고대의 시간을 불러올 수도 미래의 시간을 미리 예견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작품 안에 눈으로 보는 세계를 담을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그려내는 힘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신과 인간을 넘나드는 영웅의 에너지를 가진 존재가 예술가입니다.

김현수 작가가 퍼 올리는 상상력의 샘은 신화의 깊이와 맞닿는 내면세계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도깨비들과 요정들, 그리고 은밀한 협력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머리에 자라난 뿔과 어깨의 날개는 내면으로 확장된 영혼입니다. 연한 살갗을 드러낸 피부는 쉬이 상처 입을 것 같지만 순수의 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현실은 우리의 자유로운 본질을 쉽게 훼손시키지만 내면에 간직한 상상력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줍니다.

1섹션의 중앙을 지배하고 있는 부드럽고 둥근 물체들은 피나리 산피탁의 작품입니다. 동아시아의 주목 받고 있는 작가인 그는 20년간 여성의 신체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본형태로 증류시키거나 정신성을 부여한 작품을 만들어왔습니다. 여성의 가슴을 닮은 형상들은 자연세계의 이미지이자 불교의 사리탑이나 봉헌그릇을 연상시킵니다.

작가는 '일시적인 광기'라는 이 작품을 통해 유머, 시각, 소리, 움직임의 감각이 지닌 허무함과 활력을 탐구하고 관객과 감정적으로 상호 소통하고자 하였습니다. 관객의 소리에 반응해 부드럽게 움직이는 이 조각들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욕망에 대한 작품자체의 정서와 삶을 간직하고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중요한 변화에 맞닥뜨린 인간이 '일시적인 광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산피탁의 부드러운 유방은 그 사이를 거니는 관객과 소통하고 자극하며 대지로부터 끌어올린 에너지와 같은 힘을 전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