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전시를 기획하며 – Section2. 신화의 재해석
신화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앞서 언급한 것처럼 2섹션의 '신화의 재해석'에서는 5명의 주요작가를 통해 예술가들이 고대의 샤먼처럼 신화의 의미를 재해석해 줍니다.
박생광과 서용선의 공간에서는 동양의 신화에 이어 한국 신화에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양신화의 인어아가씨는 알아도 동양신화에 등장하는 인어아저씨 '저인'은 생소한 것인 동양신화에 대한 우리 인식의 현 주소입니다. 한민족의 정서를 발견하기 위해 먼저 박생광의 작품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서양의 신화에 익숙해져 있는 만큼 우리의 상상의 샘 역시 우리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미신척결의 결과에 따라 무속신앙의 상당부분이 보존되지 못하고 가치절하 되어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예술가들에 의해 우리민족의 정신적 가치로 부활하여 작품 속에 그려졌습니다.
박생광은 수묵화 일색의 한국 화단에 민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국적인 채색화의 진명목을 보여주어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화가입니다. 민화가 주는 정감과 선명함에는 우리민족의 정서와 한국의 자연이 잘 드러나 있고 박생광의 작품에도 이러한 정서와 색채감각이 담겨있습니다.
한민족에게 자연스럽게 물들어 있는 정신이 곧 우리의 신화라고 보여집니다. 그의 색채가 갖는 강렬함은 우리의 본성을 그만큼 자극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다음은 서용선의 작업세계입니다.
작가는 내면의 가치를 찾아 떠난 모험가이며 정신적 가치를 누구보다 갈구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본 모습이 무엇이며 어떤 모양의 전형을 띠는지를 찾아 헤매다 보면 신화와 역사에 대부분 가 닿게 됩니다.
문학가 이윤옥 선생은 '작가의 작업 역시 '나'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예술은 가장 개인적인 행위와 욕망을 따라가는 그 여정을 통해서만 만인의 보편적인 행위와 욕망으로, 더 나아가 만인의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떤 경우도 그 역은 불가능하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생명을 취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삶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의 역사는 자주 폭력성과 그에 따른 비극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 도시인들 역시 생존을 위해 현상적 삶을 반복합니다.
서용선의 시선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자문합니다. 마고 역시 그러한 승자의 기록에 따른 역사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그가 한민족의 원형을 단군 이전인 마고 신화에서 찾는 것은 모계중심의 원형을 잃어버린 신화적 왜곡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리산 노고할미나 제주도 설문대할망, 그리고 마고와 같이 거대한 몸을 지닌 할미들은 세계의 다른 신화들처럼 생명을 품고 돌보는 창조의 지모신입니다. 마고는 기존의 신화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의 전환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의 드러냄입니다.
이번 전시는 시각예술의 다양한 장르가 만납니다.
만화가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10년에 걸쳐 그려진 작품입니다. 현재 중앙아시아 시리아 부근에 위치했을 전설의 나라 아르미안과 네 명의 황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신화속의 영웅이 대부분 남자인 상황을 전복시키고 여성영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부각시킵니다.
신일숙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상대의 본심에 동요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객관적 사실이나 말을 통한 설명보다 최소화된 언어와 감정의 교류가 더 강합니다. 이는 비객관, 즉 내면의 세계에 대한 친밀성을 느끼게 합니다.
신화와 역사의 남성적 서술이 보여주는 전쟁과 사랑, 그리고 평화에 대한 해석과는 달리 여신 가이아의 모성적 감성을 담고 있어, 삶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생에 대한 예찬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신화의 특성인 서사와 시각예술의 이미지가 혼합되어 강렬한 감성 전달력을 갖습니다. 이것은 예술의 주요한 특성이며 만화 역시 효과적으로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권여현이 신화라는 소재를 선택한 데에는 보는 사람을 주목하게 하는 맥거핀의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그가 신화적 소재를 사용하는 데는 보다 복잡한 이유들이 작용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우선 신화가 갖는 상징성을 이용하여 개인적 서사의 구축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작가 스스로 디오니소스적 요소가 강하다고 말하고 있듯 원초적 본성에 대한 이끌림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것을 야만성과는 다른 의미의 동물성, 즉 감각의 감응이라고 말합니다. 이 동물성은 야만성과는 단계가 다르다고 보여 인간이 혹은 작가가 궁극적으로 회복해야 하는 특성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작가는 동물성에 가까운 본성이나 감성보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사유에 익숙해 보였습니다.
그는 '양가성'의 구조에 관심이 많으며 '동물성'을 이해하기 위해 분석적이고 사유적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말을 바꾸어 자신의 규칙적이고 분석적이며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천착이 오히려 반대 급부의 요소를 지향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물 같은 리좀 속의 존재들을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형태이며 날 것 같은 감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아니 날 것 같은 감성이 쏟아 부어져 있습니다. 이로써 권여현의 작업은 두 가지의 독특하면서도 상반되는 분위기를 띱니다. 현대철학의 매우 사변적인 과정을 실험하고 있어 복잡한 알레고리를 형성하면서도 표현과 소재가 지닌 날것처럼 감성적이고 자연회귀적 동물성이 작업에 그대로 표현된다는 점입니다. 다점소실점과 혼성모방 또한 이런 특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미와 야나기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에 단독 전시했던 주목 받는 작가입니다. 이번 출품작 '요정 이야기'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 있는 여성 이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정이야기의 '무제' 작업들은 텐트같은 인물을 형상화 했는데, 등장인물은 소녀의 다리와 늙은 여인의 팔을 하고 있습니다. 야나기는 이 텐트 구조에 대한 아이디어를 멕시코 주술사에게서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주술사는 그녀 고객의 현재와 미래의 운명을 읽어주기 위해 텐트로 초대합니다.
작업 속의 대상들은 상호 전환될 수 있는 요소의 순환적인 연속체로서 다루어집니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들어 아름답지 않은 여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습니다. 또한 소녀의 순수성과는 상반되는 나이든 여성의 세상을 다룰 줄 아는 지혜와 교활함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요정이야기에서, 작가는 소설가 Garvriel Jose Garcia Marquez가 그의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소녀들과 늙은 여자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요정이야기로부터 이미지들을 가져왔습니다. 종종 흉측한 마스크들을 쓴 늙은 여성으로 분장한 소녀에게 두 개의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야나기는 어린 소녀와 늙은 여성이 상호전환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어린 소녀들에 대한 결점 없는 순수함의 이미지와 나이든 여성들에 대한 교활한 기만성의 이미지를 갖는 남성의 관점은 사실 동전의 양면일 뿐임을 지적합니다.
'요정 이야기'는 나이듦과 젊음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부각시켰으며, 허구와 사실, 삶과 죽음에 대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관념에 도전하고 투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