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전시를 기획하며 – Section3. 고양의 전설
3섹션은 고양의 전설입니다. 고양 명칭 사용 6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고양의 주요 전설을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제작된 작품입니다.
기존의 설화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미국, 이란, 호주, 한국의 회화작가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등에게 고양전설의 스토리를 미리 들려주고 작가마다의 예술적 감성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의뢰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신화가 가진 상상력의 의미를 제대로 부각시켜 새로운 고양전설을 탄생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신화는 우리에게 그러한 지혜의 샘입니다. 상상력은 현재의 획일적이고 메카니즘적인 사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날개와 같습니다.
이 섹션에서는 원로만화가인 백성민이 '효자 박태성과 인왕산 호랑이'를, 볼로냐 국제그림동화전에서 주목받은 이란작가 알리레자가 '베라산마을의 아기장사 이야기'를, 종이의 자유로움이 주는 역동성을 보여주는 미국작가 미아 펄먼이 '용구재 이무기 이야기'를, 종이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커팅의 섬세함을 이용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호주 출신 페이퍼커팅 작가 엠마 반리스트는 '고봉산 한씨미녀 이야기'를, 역사와 개인, 그리고 사회와 관련된 서사를 거대한 벽면 드로잉으로 풀어놓는 박미라 작가는 '공양왕의 삽살개 이야기'를, 그리고 류준화 작가는 지모신 가이아의 본성처럼 전쟁을 돕기보다 고통을 종식시키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인으로 '북한산 여장군, 밥할머니 이야기'를 묘사하였습니다.
6명의 작가들이 보여준 뜻밖의 시선과 다채로운 표현방법은 고양의 전설이 새로운 예술적 변신과 승화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과거의 원시인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오늘날처럼 과학적이고 분석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연도 자신과 같은 감정과 사유방식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따라서 자연을 묘사할 때 인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시작이나 당시의 상황, 또는 민족간의 전쟁도 신들의 이야기로 비유하여 구전하였을 뿐 인간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처럼 신화와 전설은 인간의 정서와 바램이 강렬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주창조와 기원의 신화는 당시의 사람들에겐 허구가 아니며 만물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설은 창조 이후 인류가 시작되어 나라를 건립하고 살아가면서 인간의 생각과 바램을 담은 오래된 이야기로, 승자의 역사를 강화하기도 하였지만 승자에 의해 가려진 진실의 역사를 이야기 속에 담아온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승자의 기록은 역사가 되고 패자가 간직한 진실은 전설이 되어 구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현대에는 신화와 전설이 본래적 의미들이 변색되어 동화책 속의 허구적 이야기로 물러서 있습니다. 신화가 갖는 상상력의 부분만 대중문화의 오락성에 기여하는 부분이 큽니다. 그러나 이 상상력은 끊임없이 미술과 문학 등의 예술가들을 자극하고 신화가 본래 가진 자유롭고 내면적 정신세계를 탐미하게 했습니다.
삶이란 육체와 정신이 매우 복잡하게 연관된 상태에서 인식되는 것이며, 현대의 과학문명은 그 속도를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어 현상을 파악하기에도 어지러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지금이야 말로 이 현상에 집중하되 거리를 두고 '신화의 시간'으로 바라보는 일이 절실함을 다른 이들보다 앞서 알아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질주가 잊고 잇는 것이 무엇인지를 작가 스스로의 물음에 관객이 동참하기를 종용합니다.
신화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상징의 가면을 쓴 진실입니다. 수 만년 우리 앞을 살아간 사람들이 평생을 통해 얻은 지혜를 상징으로 신화 속에 남겼습니다. 가족을 이루고 경제활동을 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우리의 삶은 살아야 하기에, 유한하기에 종종 슬픕니다. 그러나 신화가 들려주는 지혜는, 우리가 이 삶에서 받은 어떤 손상이나 성취조차도 초월하는 장소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 할 수 있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