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진작가 초대전19> - 박병일 작가 인터뷰
마치 제도하듯 그려진 박병일의 도시는 단순한 사실의 재현 이상이다.
잘 개발된 현대화된 도시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고 빈틈없이 그려내는 것은 박병일의 회화가 목적하는 바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작가에게 그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현대화된 도시는 '풍경이 될 만한 어떤 것'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 어떤 것이다.
"내 삶의 공간이었던 도시가 이제는 설 곳 없고 갈 곳 없는 거대한 미로 속 같다.
에너지 넘치는 도시가 욕망으로 솟구쳐 오를 수록 거대장벽이 되어 날 가두려 한다.
수많은 인파는 어디론가 숨어버린지 오래다.
인적조차 느낄 수 없는 이도시가 너무 낯설고 차갑게 느껴진다."
박병일 자신의 고백처럼 그것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에토스(etos), 새로운 형태의 폭력의 에토스다.
그것은 부재의 시각화를 통해 가시화된 폭력이다. 높이를 경쟁하는 빼곡한 빌딩숲, 그것들의 사이를 멋지게 돌아나가는 고가도로, 강을 가로지르는 교각들, 질서정연하게 뻗은 한 도로들은 이 시각화된 에토스를 정의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박병일의 도시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 곧 부재에 의해 정의된다.
이 도시는 사람의 생명체 뿐 아니라, 움직이는 것들의 전적인 존재하지 않음에 의해 특화된다.
인적이 끊긴 도시의 공간들. 보행자 없는 보도. 운송기구들이 사라진 도로, 멈춰버린 분수, 일체 미동조차 없는 가로수들...
도시는 움직임의 절대적인 부재와 정지된 시간에 의해 통제된다.
역사 진행의 최종적인 정지, 또는 문명의 겨울, 곧 대재앙의 징후적 풍경이다.
박병인의 재앙적 도시를 결정짓는 두 번째의 것은 빛(光)과 색(色)의 부재다.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그림자의 부재로 가시화되는 빛의 부재다. 여기서 부재하는 빛은 폴 틸리히 (Paul Tillich) 가 말했던 그 안에 미래에 대한 심오한 희망이 내재하는 '이 땅의 광채'의 부재상태에 가까우리라. 그리고 빛의 이러한 부재로 인해 색의 부재는 수묵담채기법의 물리적 귀결 이상의 필연적인 것이 된다.
여기서 사물들은 그 세부들, 곧 차이의 부재에 의해 더욱 폭력적인 현존으로 자리한다.
- 심상용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