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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세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역사적 스펙터클 대신한 ‘주관성의 오페라’ 2011.11.25 | 9381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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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주세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역사적 스펙터클 대신한 '주관성의 오페라'
La Traviata
 
 ‘트라비아타(Traviata)’란 ‘길을 잘못 든 여자’ 또는 ‘바른길을 벗어난 여자’라는 뜻이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걷는 길 대신 그 사잇길을 걸어가는 여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의 극 중 직업이 코르티잔(courtesan)이어서 붙은 제목. 코르티잔이란 상류사회 남성의 사교계 모임에 동반하며 그의 공인된 정부(情婦) 역할을 하던 여성으로, 기생이나 게이샤처럼 시작(詩作)과 가무(歌舞)에 능해야 했고, 시사적 지식과 교양을 갖춰 상류사회 남성들의 대화 상대로도 손색이 없어야 했다. 베르디 오페라 중 중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 트라비아타>는 그 이전까지의 베르디 오페라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획기적인 작품이다. 우선 <나부코>나 <맥베스>처럼 역사를 소재로 한 스펙터클이 아니고 ‘주관성’이 강조된 오페라라는 점이 새롭다. 남녀주인공은 소박한 개인적 행복을 얻으려 했지만, 인습적인 사회는 그런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내와 사별한 뒤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동거하는 동안, 결혼하지 않은 채 함께 산다는 이유로 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베르디에게는 이 주제가 각별히 마음에 다가왔다고 한다. 언제나 오페라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편들었던 베르디는 오페라의 토대가 된 연극 <카멜리아 레이디>(동백아가씨)를 스트레포니와 함께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버려지는 여주인공의 슬픔에 공감했다. 여주인공에게 모든 것이 집중된 ‘프리마 돈나(prima donna) 오페라’라는 점도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비올레타 역의 소프라노는 다채로운 창법과 음색을 구사하며 기존의 가창 규범을 뛰어넘어야 한다. 소프라노 리리코, 스핀토, 드라마티코, 콜로라투라의 특성을 모두 발휘해야 하는 배역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베르디의 음악은 비올레타를 고귀한 품성을 지닌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매춘여성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여주인공에게 기품을 부여했다는 것 자체가 오페라 극장에 별생각 없이 즐기러 오는 당시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 되었다. 관객은 우선 1막 ‘축배의 노래’, 2막 2장 ‘집시들의 노래’와 ‘마드리드의 투우사’ 등 다채롭고 화려한 파티 장면과 춤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이 작품의 참된 묘미는 2막 1장에서 비올레타와 제르몽이 나누는 대화 장면에 있다. 노회한 장사꾼 제르몽이 사회적 신분이 낮은 젊은 여인을 교묘하게 설득해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사회의 안전을 지켜내는 이 대목은 동거 문제로 주변의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던 작곡가 베르디의 ‘인습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 장면의 긴 이중창은 아리아 위주였던 오랜 오페라 형식의 전통을 극복하려는 베르디의 참신한 시도였다. 음악적 모티프들이 때로는 선율적으로 때로는 레치타티보 식으로 함께 자라나 유기적으로 하나의 예술적 총체를 이루는 획기적인 예가 된 것이다. 맨 처음에 연주되는 이 오페라의 전주곡 역시 경쾌한 ‘축배의 노래’ 주제로 시작하지 않고, 비올레타가 병으로 죽어가는 3막 전주곡의 어둡고 처연한 현악기 선율로 시작한다. 베르디가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회적 약자의 비참한 죽음’을 이 오페라의 주제로 삼았음을 확연히 알게 하는 대목이다. 오늘날 획기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철학적 깊이를 지닌 연출을 선보이는 세계적인 연출가들은 라 트라비아타를 연출할 때 언제나 이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아리아보다 중창: 오페라의 극적 요소 강조
 
 1막은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불리는 코르티잔 비올레타 발레리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으로 시작된다. 당시 코르티잔들 가운데는 매일 밤 파티와 술로 시간을 보내다 병이 들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 비올레타 역시 폐결핵이 깊어져 건강이 악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런 비올레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남몰래 흠모해온 청년 알프레도는 이 파티에 와서 처음으로 비올레타를 가까이 대면한다. 알프레도는 귀족이 아닌 평민계급의 아들로, 아버지 제르몽이 장사로 큰 돈을 번 덕분에 상류층 사교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여기 펼쳐지는 파티는 부부동반의 일반적인 사교모임이 아니라, 귀족이나 재산가인 남자들이 자신이 후원하는 코르티잔 및 파리 오페라극장의 발레 댄서들을 데리고 즐기는 자리다. 모인 사람들이 알프레도에게 권주가로 시 한 수를 청하자 알프레도가 먼저 1절을 읊고 주인인 비올레타가 답례로 2절을 부른다. ‘청춘의 피가 끓어오르는 동안 인생을 즐기자!’는 내용의 이 노래가 흔히 ‘축배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 권주가(Brindisi) '리비아모'다. 알프레도는 드디어 비올레타에게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얻는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곧 그의 진심을 알고 사랑에 빠지는 비올레타. 두 사람은 파리의 한적한 교외에 살림을 차리고, 비올레타는 사교계 생활을 청산한다.

 2막 1장은 파리 교외, 비올레타의 집. 두 사람은 사교계 친구들에게 발을 끊고, 정식 결혼은 못 했지만, 교외에 집을 얻어 조용하고 행복한 신혼을 즐긴다. 알프레도는 자신을 위해 화려한 생활을 버린 비올레타와 사는 삶이 천국처럼 행복하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비올레타를 찾아와, 자기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오빠인 알프레도가 매춘여성과 함께 산다는 소문 때문에 난처하니 알프레도와 헤어지라고 요구한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비올레타는 결국 노회한 제르몽에게 설득당해 비통한 심정으로 알프레도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사교계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짓 편지를 써놓고 파리로 떠나버린 비올레타 때문에 이성을 잃은 알프레도.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를 노래하며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아버지를 뿌리치고 파리로 달려간다. 2막 2장은 파리에 사는 비올레타의 동료 코르티잔 플로라의 집이다. 화려한 파티에서 집시로 분장한 발레리나와 코르티잔들이 노래하며 춤을 춘다. 곧 가스통 자작과 투우사 분장을 한 남자 손님들이 등장해 투우사의 합창을 노래한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집시와 투우사들은 진짜가 아니고, 이것은 파티 손님들의 ‘롤 플레잉 게임’이다.
‘집시들의 노래’와 ‘마드리드의 투우사’는 귀에 익숙한 음악일 뿐 아니라 대개 이 장면은 이 오페라 전체에서 가장 화려하고 시선을 끄는 부분이다. 비올레타는 듀폴 남작과 함께 파티에 왔다가 혼자 나타난 알프레도와 마주치는데, 듀폴과 내기 도박을 해 번번이 이긴 알프레도는 도박에서 번 돈을 사람들 앞에서 비올레타에게 내던지며 모욕을 준다. 파티 손님들이 경악하며 비올레타를 동정하는 가운데 제르몽이 나타나 자기 아들의 행동을 꾸짖고는, 아들을 데리고 나가버린다.

 3막은 파리에서 비올레타가 살고 있는 집이다. 알프레도는 듀폴과 결투를 벌여 상처를 입힌 뒤 사교계의 소문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뜻에서 당시 관례대로 외국으로 떠났고, 그와 헤어진 비올레타는 병이 깊어져 죽어간다. 밖에서는 즐거운 카니발이 한창인데, 아버지가 보낸 편지로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알프레도가 외국에서 돌아와 비올레타를 찾아온다. 알프레도는 파리를 떠나 다시 단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고 아버지 제르몽까지 찾아와 지난날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만,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게 자기 초상화를 건네고는 그들 앞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작가 뒤마의 연애 체험 소재로 한 원작
 
 <라 트라비아타>는 <춘희(椿姬)>라는 제목을 달고 1948년에 이인선, 김자경 주역으로 한국에서 초연된 첫 서양오페라 작품이다. 단순히 눈이 즐겁다는 이유로 이 작품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아니며, 관객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의 덧없음, 신분의 차별과 죽음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해 준다는 것이 이 오페라의 더욱 큰 매력이다. 하지만 1853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초연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동시대의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 관객들에게 거슬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비올레타 역의 소프라노가 너무 건장해 보였던 것도 이유의 하나였다. 이 오페라의 원작소설 <카멜리아 레이디(La dame aux camelias)>를 쓴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2세(Alexandre Dumas fils)는 <삼총사>, <몬테 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 1세의 아들이다. 뒤마 2세는 20대 초반에 당대 사교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마리 뒤플레시스(1824-1847)와 한때 연인관계였다가, 마리가 스물셋에 폐결핵으로 죽자 그녀를 애도하며 이 소설을 한 호텔에 박혀 집필했다. 자신도 정실 자식이 아니었던 뒤마 2세는 사생아나 매춘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면서 이들을 차별하는 사회의 이중윤리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파티 장면의 찬란한 음악들, 그리고 비올레타와 제르몽의 긴 이중창 외에도 이 오페라에서는 마음을 사로잡는 아리아와 중창들이 계속 이어진다.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이중창 ‘Un difelice eterea’(언젠가 그 아름답던 날), 알프레도의 사랑에 설레며 고민하는 비올레타의 아리아 ‘E strano!...Sempre libera’(이상해...언제나 자유롭게), 아들 알프레도에게 돌아오라고 간곡히 호소하는 아버지 제르몽의 아리아 ‘Di Provenza il mar, il suol’(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 죽음을 예감하는 비올레타의 아리아 ‘Addio, del passato beisogni ridenti’(지난날의 즐거운 꿈이여, 안녕),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재회해서 부르는 이중창 ‘Parigi, o cara’(파리를 떠나서) 등은 특히 주목할 만한 명곡들이다.
 

 

이용숙
글 | 이용숙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연합뉴스 문화부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오페라, 행복한 중독>, <춤의 유혹> 등 다수의 문화 관련 저서 및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