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하여 ‘아는’(知) 것과 ‘좋은’(好) 것은 크게 다른 것일까?
S공연장의 휴식시간. 로비는 1부 공연(샤를르 뒤트아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스트라빈스키 ‘불새Firebird’)의 여운에 젖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저마다 쏟아내는 한 마디가 흥분에 휩싸여 있다. 둘러보니 아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칼럼니스트 Y는 벌써 입가에 거품을 물고 있고, 요즘 부쩍 공연장에서 자주 만나는 후배 P는 멀리서부터 반가운 눈인사를 보냈다. 이 공연은 성공이란 예감이 들었다. 관객의 얼굴에 도는 생기가 유달랐기에 말이다.
우리가 접하는 공연예술은 교감이 무척 힘들다지만 선입관이란 가탈만 극복하면 오히려 쉽다. 그 선입관이란 대부분 지나치게 의미를 찾은 결과이다. 동일 공연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가 제각각인 것도 그렇다. 관객이 공연 전에 작품 해설을 미리 공부하는 것이 어떤 선입관을 굳힌다면 분명 장애를 유발한다. 물론 좋아 하는 것을 더 많이 알려고 하는 노력은 고달파도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문제는 공연장에서 누리는 관람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위대한 작곡가의 뛰어난 작품이 후세에 전해지는 과정은 눈물겹다. 어렵게 작곡해서 공연(출판)을 해도 선입관이 뚜렷한 평론가와 지휘자와 연주가를 포함한 동시대인들이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다. 그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곡들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사후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 작품이 재발견(재평가)되고 명곡의 반열에 오르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흔히 우리가 반복해서 좋아하는 것들의 경향은 ‘익고’, ‘아는’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도 그런 경향 때문에 안개처럼 쉽게 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또 익다고 짐작하는 것들이 늘 생명 있게 재현되는 것일까? 나의 경우 솔직히 ‘거의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새 버릇이 생기고 있다. 음악이나 오페라를 감상할 때, 그 곡에 대한 해설이나 대본을 거의 읽지 않는다. (다만 평소 관심이 가는 작품에 대한 연구의 저변을 넓히려고 무척 애를 쓴다) 그런 뒤로는 감상의 자유가 주는 감동의 변화와 깊이에 크게 놀랐다.
여행전문기자인 친구 C는 여행 이야기 중 최고의 말을 들려주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빈틈없이 준비하라. 그러나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 모든 준비를 다 잊어버려라.” 참으로 울림이 큰 말이었기에 삶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지니고 있다. 좀 짓궂지만 공연장에서 가장 필요한 동시에 가장 불필요한 것이 바로 공연 프로그램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프로그램의 내용은 대부분 선입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소리를 들으면서 그 알 수 없는 의미를 찾지 않고 그냥 좋아 하듯이, 공연(감상)을 자유롭게 즐길 수는 없을까? 공연을 기획하거나 관람을 선택할 때, 선입관을 가지지 않고 새로운 욕구대로 충실할 수는 없을까?
글쓴이
신중완 성모한의원 원장,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