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한국 근현대 미술의 변화
“6.25전쟁 60주년” 고향을 떠나야 했던 화가들展
글_ 조은정(미술평론가)
광복 이후 한국미술계의 이념 갈등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미술인들은 자발적으로 미술대를 조직하였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이 문화민족임을 연합군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른바 가두미술 혹은 환경미술이라 할 만한 그들의 활동은 남한은 미(美) 군정이, 북한은 소련이 임시로 정치하는 동안 사상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해방기념미전’을 절정으로 새로운 양상에 접어든다.
광복 이틀 후 조선문학건설본부가 설립되고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에 조선미술건설본부가 탄생하지만, 젊은 작가들은 독자적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미술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미술건설본부는 그해 10월 20~29일 광복을 기념해 열렸던 덕수궁 전시실에서의 ‘해방미전’을 마지막으로 조선미술협회로 재조직되었다.
정치에의 절대불간섭, 미술문화의 독립적 향상을 꾀함, 민족미술을 창조하여 건국에 이바지함 등을 강령으로 했음에도 회장인 고희동이 독단으로 비상국민회의에 참가하자 조선미술협회의 많은 회원들은 탈퇴하고 말았다. 몇몇은 조선프롤레타리아미술동맹과 통합하여 조선미술가동맹을 결성하였고, 나머지 대다수의 탈퇴자들은 조선조형예술동맹을 창설하였다. 진보적인 두 단체는 이후 조선미술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된다.
미군정이 민족진영의 탄압을 시도하면서 미술계에도 그 여파가 몰아쳤다. 조선미술협회의 후신(後身)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구현한 대한미술협회를 제외하고는, 모든 단체가 결렬되거나 지하로 스며들었다. 사상전향교육기관인 국민보도연맹은 산하에 미술동맹을 설치하고 정종녀, 최재덕, 김만형, 정현웅, 이쾌대, 배운성, 김용환 등 좌익조직에 참여했던 미술가들에게 매주 1회씩 반공 포스터 전시회를 하게 하는 등 이념에 의한 탄압과 감시를 행하였다.
6.25전쟁 이후 한국미술계의 정체성
이념 갈등은 6.25전쟁 당시의 사망과 실종, 그리고 전쟁 전후의 월남(越南)과 월북(越北) 등 미술인의 지역적 유동의 이유가 되었다. 6.25전쟁 이전에 북으로 간 이들을 1차 월북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 미 군정청 문교부의 국립서울대학교안에 반대하여 교수직을 사직한 길진섭이나 남한과 달리 조형물을 만드는 일이 활발하여 미술인에 대한 대우가 북한이 더 좋다고 생각한 조규봉 등이 그들이다. 전쟁 동안에는 최재덕, 김만형, 정종녀 등이 9.28 서울 수복을 전후로 2차 월북화가가 되었다. 많은 화가들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왔지만, 북으로 간 화가들도 적지 않았다.
이념 전쟁의 경험은 한국작가들로 하여금 체제순응적이며 순수지향적인 색채를 띠게 하는 한계가 되었다. 하지만 유엔군에 소속된 서양 여러 나라와의 직접적인 접촉, 유네스코 산하기구의 구호활동 등 전쟁을 통한 세계 경험은 세계와 구분되는 요소 즉, 한국문화의 특수성과 전통을 무기로 세계미술계에 등장할 것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술계 내부의 헤게모니 변화라는 새로운 동향도 전개되었다. 전쟁 이후 남한에 거주하는 미술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반공(反共)의 국시(國是)를 존중함을 증명해야 했다. 특히 전쟁기 부역자 심판을 통해 권력이 강화된 대한미협의 수뇌부를 중심으로 국전이 운용됨에 따라 미술계의 권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6.25전쟁기에 양산된 미대생들이 화단에 진출함에 따라 한국미술계에 새로운 미술양식이 도래하였다. 물론 신진들에 의한 자생적 신미술이 생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양식을 강요하는 미술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생성되고 받아들여진 것은 우리 미술계에 커다란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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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희동(高羲東, 1886~1965)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가. 한국 최초의 미술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으며 귀국 후 대한미술협회장, 대한민국예술원장 등을 지냈다.
2) 비상국민회의(非常國民會議) : 8·15광복 직후 좌·우익의 대립이 격심한 가운데 범국민적인 과도정부 수립을 위하여 1946년 2월 1일 이승만, 김구, 김규식, 이시영, 안재홍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다. 애초에 좌·우익 진영을 합한 단체로 출발하고자 했으나, 좌익진영이 참가를 거부함으로써 우익진영만의 집결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