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야기

 

최승랑│작가인터뷰│아람문예아카데미

 추운 어느 날, 최승랑 작가를 만났습니다.  아람문예아카데미 <소설창작연습>수업을 통해 2016년 등단, 소설가의 꿈을 이룬 최승랑 작가는 2020년 소설집 <추억의 습관>을 펼쳤습니다.  최승랑 작가의 소설은 우리에게 공감과 따뜻함을 선사합니다. 소설가 이순원 작가는 그것을 '다양한 빛깔의 사랑'이라고 평했는데요, 우리는 인터뷰 내내 왜 작가의 소설이 그렇게 따뜻했고, 또 사랑이 가득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왜 사랑을 그려냈을까? 그리고 <소설창작연습>수업은 최승랑 작가에게 어떤 원동력을 주었을까? <소설창작연습>을 오랜기간 수강했던 강의실에서, 우리는 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소설창작연습> 수강생에서 <추억의 습관> 작가까지
- 소설창작연습 문우들은 워낙 열정적인 분들이라, 티타임에도 함께 소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눠요.



Q. ‘소설창작연습’ 수업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소설창작교실’을 수강하게 된 계기는 뚜렷하지 않다. 특별한 목표를 두고 들어온 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문학작품을 즐겨 읽으며 인물들의 삶에 들어가 보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가장 좋아했던 소설은 ‘폭풍의 언덕’. 소설에 매료가 많이 되었고, 잠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이랬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살다가, 현재 살고 있는 고양시 아람누리아카데미에서 소설창작교실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1년부터 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뭐랄까 망설여졌다. 떨리고 두렵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그랬다. 그러다가 2012년도에 ‘해봐야겠다!’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다.
아마 누구나 다 그랬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꼭 소설을 써야지!’라고 들어오기보다는 글 쓰는 스킬을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다못해 일기를 쓰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쓰고 싶어 하지 않나. 나도 그랬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 선생님, 문우들과 수업을 하다 보니 선생님의 가르침이 너무 좋아 진짜 소설을 쓰기까지 이르렀다.


Q. 소설창작연습반의 지향점은 ‘수강생 전원 등단’이라는 것을 보았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 말 자체를 오늘 처음 듣는다(웃음). 왜냐면 그게, 등단을 하면 당연히 좋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연스러운 글쓰기’가 더 좋다고 본다.
지금은 그만 두셨지만 등단을 향해서 정말 치열하게 쓴 분이 계셨다. 그 분을 보면서 굉장히 잘 쓰기도 잘 쓰지만, ‘너무 고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샘이 그렇지 않나. 샘을 예로 들면, 맑은 샘을 계속 퍼올리면 어느 순간 고갈이 되는데, 고갈된 마른 바닥을 벅벅 긁듯이 퍼올리는 것보다 여유를 두어 비가 오고, 땅이 촉촉해지고,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퍼내는 것이 제일 자연스럽고 좋다. 맑은 물이 샘에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원하고 맑은 물을 퍼올리며 오랜 갈증을 해소할 때, 그 때 글을 쓰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샘은 소재를 의미하는데, 그러면 정말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술술 써진다. 그렇기 때문에 등단이라는 압박감을 가지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또 물론 등단이 되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등단이 작가의 라이센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원하는 때 원하는 소재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넓은 의미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Q. 수업은 어떤 형식과 분위기로 진행이 되는지. 
처음에 수업을 시작하면 선생님은 ‘문학은 이래야 된다!’ 이런 것들은 거의 말씀하시지 않고, 문학을 사랑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말씀해주신다. 또 우리는 한 주에 한 번 수업하는데, 문우들이 돌아가면서 작품발표를 한다. 소설창작반 온라인 카페가 있는데, <우리들의 합평방>이라는 게시판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면, 문우들이 그 작품을 출력해서 읽고 수업에서 합평을 한다. 작가의 의도를 함께 들은 다음 선생님의 총체적인 의견과 지도해주실 부분, 관련된 내용의 강의를 하시고 수업이 끝나는데, 그게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이 되는데, 원하는 문우들은 함께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가진다. 워낙 열정적인 분들이라 그 시간에도 소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니 다들 많이 아쉬워한다.


Q. 수업의 어떤 점이 소설을 창작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합평수업. 당연히 합평수업이다. 처음에는 우린 다 새내기들인데, 우리 글이 수업에 도움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주 유명한 톨스토이나, 박완서 작가와 같은 작품으로 수업을 하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여러분의 작품을 가지고 수업을 합니다’라고 하질 않겠나. 의심이 들었는데 그게 정말 좋은 수업방식이었다. 왜냐하면 다들 소설을 창작하다보면 내용이나 형식에 무리가 있고 어설픈 점이 있는데, 그 부분을 서로가 고쳐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좋았다. 내 시선으로 안 보이는 것들이 다른 문우의 눈을 통해서는 보인다. 또 나만 볼 수 있는 문우작품의 개선점이 있다. 그런걸 서로서로 도우는거다. 또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독서. 그리고 필사. 아주 좋은 작품으로 연습하는게 많은 도움이 됐다. 


Q. 2016년, <작가세계> 신인상 수상 후 느낌이 어떠했는지?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엄청 기뻤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많은 작가들이 그러겠지만, 등단이 되면 엄청 작품을 많이 쓸 것 같고, ‘얼른 소설집을 내고야 말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작품이 쉽게 써지지 않더라. 천성적으로 게으른 것도 있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소설집을 늦게 냈다.
그래서 처음 당선될 때 기쁨과 동시에 무거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믿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문우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글 쓰는 것을... 실제로 800:1 경쟁률을 뚫고 등단했음에도, 그걸로 끝낸 작가들이 간혹 있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제는 이해가 된다. 어쨌든 선생님이 많이 채찍질해주시고, 문우들이 격려해준 덕분에 2020년, 작품집을 낼 수 있었다.



최승랑 작가가 말하는 ‘최승랑의 소설’
- 독자들이 기억하는 ‘마지막’은 웃는 모습이길 바라요.



Q. 데뷔작 이야기를 해볼까. <좁은 방>은 어떤 계기로 쓰여진 소설인가?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한다. 하루는 화상을 굉장히 심하게 입은 엄마와 소녀가 작은 집에서 어렵게 사는 방송을 봤다. 그걸 봤는데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소녀가 중학생 되는 아이였는데 엄마를 다 케어해주고 있더라. 그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좁은 방>을 쓰게 됐는데, 쓰다보니 소설의 이야기는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긴 했다.


Q. <좁은 방>을 읽으면서, ‘마지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마지막이란,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마지막이라는 말은 뭔가가 끝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Ending. 사실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이 마지막이다. 순간순간이 과거가 되고 지나가버린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이 순간도 마지막이지, 다시는 오지 않는다. 인간이 ‘시간’ 안에서 살기 때문에 다시는 거슬러 갈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순간순간 잊혀진 마지막과 기억하는 마지막이 있겠지. 나는 독자들이 기억하는 마지막은 웃는 모습이기를 바란다.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Q. 최근 <추억의 습관>을 출간했다. 어떤 느낌이었나. 
내가 쓴 소설 중 9가지를 추려 소설집을 만들었는데, 처음이라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기뻤고, 주변에서 축하를 정말 많이 해줬다. 그런데 나 자체로는 막 뛸 듯이, 날아오르는 듯한 기쁨보다는 평범한 기쁨에 가까웠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늦긴 했어도 난 계속 이 길을 갈 것이고, 어쩌면 (소설집을 내는 것이)평범한 일상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매번 뛸 듯이 기쁘거나 희열을 느끼면 내가 불타 없어질 것 같았다(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평범한 기쁨으로 남겨두자, 생각했다. 그런데 참 좋았던 것은, 생각보다 많은 기성 작가분들이 호평을 많이 해주셔서 그 부분이 진심으로 뿌듯하고 기뻤다. 


Q.  ‘여러 빛깔의 사랑’이 담긴 소설집에 담고자 했던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인간의 정서이자 감정이지. 나는 이런 부분을 다양하게 쓰고자 한다. 사실 ‘여러가지 빛깔의 사랑’이라고 말한 것은 책 표사에 선생님이 써주신건데, 굉장히 감사했다. 이런 경우가 있다. 나는 그냥 썼는데, 평론해주신 분들이나 독자들이 내가 몰랐던 소설의 부분을 이야기해주는... 심지어 ‘내가 이런 이야기를 썼다고?’하며 깜짝 놀랄 때가 있다.


Q. 그렇다면 ‘좁은 방’은 어떤 빛깔일까?
초안이랑 발표작이 굉장히 다른데, 초안은 연주의 오묘한 사랑의 기류가 담긴 이야기 였다면, 발표작은 가족의 사랑, 정... 이런 걸로 바뀌었다. 앞으로 연주가 겪게 될 사랑, 연주가 할 사랑에 대해서, 그 사랑을 예고하는 소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초안의 사랑은... 석류빛이나 체리빛. 청소년들이 하는, 그런... 터질듯한 느낌의 사랑이었기 때문에 체리빛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 우연한 일상에서 포착된 순간, 그 때 받은 감정에서 영감을 받아요.







Q. 소설을 창작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사건을 보며 모티브를 얻는다고 한다. 나같은 경우는 그냥 우연한 일상에서 포착된 순간, 그때 느낀 감정에서 영감을 얻는다. 사람이나 사물에 의해 받은 감정을 그냥 쓴다.
예를 들면, 종합병원 대기실에 약간 야윈 노인분이 앉아계신다. 연세 든 분들은 인지능력이 떨어질 때가 있지 않나. 그래서 본인이 의자에서 일어서고자 할 때 내 손을 얹고서 일어날 때가 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지만, 곧 그 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저렇게 여윈 몸으로 왜 보호자 없이 혼자 오셨을까?’ 그 장면을 통해 전후의 상황을 유추해서 그려나가는거다. 살을 붙여서. 아니면 카페에 어떤 여자가 커피를 마신다? 그러면 왜 혼자 커피를 마실까,부터 시작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거다. 그런 식인 경우가 되게 많다. 한 장면만 봤을 때 오는...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왜 내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까(웃음).


 Q. 글을 쓰는 노하우가 있는가.
사실 나이만 먹었지, 거의 신출내기 새내기 신인작가다. 노하우가 따로 없다. 기성작가분들이 들으면 욕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그냥 쓴다. 처음부터 막 구성을 정하고 쓰는 분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렇게 못한다. 그냥 쓴다. A4용지로 앞장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대부분의 작가가 아마 그러지 않을까. 막 쓴 것을 나중에 펼쳐보고, 천천히 읽어보고, 구성도 맞추고, 전후 개연성이 있는지 없는지 수정하고. 그런데 나는 쓰는 단계 반, 수정하는 단계 반이다. 절반을 수정하는 단계로 쓴다. 또 하나, 소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매우 논리적이어야 된다. 사건 전후에 이유가 나온다던가, 최선의 개연성은 있어야 된다는거지. 그런게 논리적이라는 건데, 소설의 내용은 충분히 자유로워도 되지만, 형식은 확실하게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쓰는 소설의 방식이고, 노하우라고 할 순 없다. 노하우가 없지, 나는(웃음). 


Q. 차기작을 위하여 요즘 가장 눈에 들어오는 주제는 무엇인가.
사실 그건, 말하기가 좀 그렇다. 지키지 못할 ... 탑 시크릿이라고 해두자. 못 지키면 약간 창피하기도 하고, 내 말에 책임 못 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 근데 여지껏 나는 주로 사랑이야기를 썼다. 내가 왜 사랑이야기를 썼을까 생각해보면, 사랑에 대해 많이 알아서 그런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정서다보니 그런 것 같다.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더 넓은 세계에서 알고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른걸 썼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일단은 조금 여유를 두고, ‘사랑’이라는 것에 조금 벗어나 써볼까 생각 중이다. 근데 어떻게 될진 모르겠다(웃음). 









Q. 마지막으로, 소설창작연습을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우리 아람문예아카데미 소설창작교실에 들어오고자 하는 분들은, 소설을 잘 쓰고 싶으신 분이 오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오면 당황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곧 이 교실에 매료되어 작가가 되신 분들이 상당하다. 꼭 작가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는 사람, 혹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고 싶은 사람은 꼭 오셔서 함께 수업을 들었으면 한다.





 

---

삶의 일어나는 작지만 특별한 순간을 최승랑 작가는 사랑하고, 그것을 소설로 펼쳐냅니다. '높은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른다는 느낌보다는 오래 걸어도 피로하지 않는 햇살 드는 오솔길을 걷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싶다'라고 밝혔던 것처럼, 그 모든 삶의 순간을 사랑으로 그려내기 위해 소설가로써의 길을 천천히, 여유롭게 산책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

  


 

---

 

---

글·기획 │이해리 (고양문화재단 교육전시팀)
사진 　│이해리 (고양문화재단 교육전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