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야기

옐로우자켓의 두 번째 내한공연을 기다리며.

“어떻게 하면 작곡을 잘 할 수 있나요?”

“나는 음악을 잘 하기 위해서 영화를 많이 봅니다. 옛날 흑백영화 모으는 취미가 있죠. 그리고 달리(Salvador Dali)와 같은 화가의 그림을 보러 다닙니다.” 2006년 첫 내한공연을 가졌을 당시 옐로우자켓의 베이스 연주자 지미 하슬립의 말이다. 공연 하루전날
가졌던 재즈 아카데미의 초청 워크샵에서 한 학생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날 워크샵에는 책에서만 봤던, 또는 자신들의 선생들에게서 말로만 듣던 바로 그 뮤지션을 직접 보기위해 많은 재즈학도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베이스 연주를 보여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전날 인천공항에서 옐로우자켓을 만나 다음날 워크샵까지 동행했던 탓에 몹시 피곤했지만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힘을 모으고 이 흥미로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렉트릭 베이스 한대만을 달랑 메고 간 지미 하슬립은 오늘 가져온 기종은 슬랩(Slap; 펑키한 느낌을 주는 베이스 테크닉의 일종)을 보여주기엔 적당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공연장에서 보는게 어떻겠냐며 상황을 슬쩍 비껴갔다.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음악을 잘 하기 위해서 그림 전시회를 다니고 영화 보기를 즐기라는 조언 역시 학생들에게는 뜬구름 잡기식의 대답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그보다는 “죽도록 연습해라”라는 말이 더욱 와닿았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음악이란 악기로 해결되는게 아니지 않는가.“음악도 음악으로만 매달리면 얻는 폭이 좁습니다. 재즈도 재즈로만 사고를 좁히면 감각이 죽습니다. 좋은 감성를 끌어내려면 평소 다양한 사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죠” 그가 강연의 끄트머리에 남긴 말이었다. 평범한 말이지만 어쨌든 현존 최고의 퓨젼 재즈그룹 옐로우자켓의 베이시스트가 오늘에야말로 비법을 전수받고자 입에 침을 괘고 몰려든 학생들에게 요약해준 ‘비법’이었다. 지난 27년간 옐로우자켓이 들려준 음악도 바로 이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월드, 펑키(Funky), 메인스트림 재즈에서 포스트밥(Post-Bop)에 이르는 ‘다양한 사고’야 말로 발표하는 앨범마다 끝없이 변화를 추구해간 옐로우자켓의 ‘퓨젼(Fusion)정신’이었다. 이렇게 변화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온 옐로우자켓의 음악적 에너지는 바로 ‘이미지네이션(Imagenation)'에 있다. 멜로디의 작곡보다 전체적인 구성이 관건인 현대재즈에서 훌륭한 재즈밴드의 조건이란 언제든 마르지 않는 상상력을 발휘하여야 하는데 있다.
 

  사실 이들의 음악을 스무드(Smooth Jazz) 계열로 보는 시각은 완전한 오판이다. 그만큼 난이도가 있다는 얘기다. 그 때문에 동류의 재즈밴드로 거론되는 스파이로 자이라나 리핑턴스와 같은 팀들이 누렸던 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음악적 중량감 만큼은 확실히 여타의 밴드들과 비교가 쉽지않은,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다. ‘뮤션들의 뮤지션’이라는 수식어도 이들의 화려한 연주력이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멘토가 되어왔음을 잘 입증하는 표현이며, 재즈의 명문 버클리 음대에서는 옐로우자켓의 곡들을 앙상블 과목의 교재에서 다루고있을 만큼, 화성운영에 있어서도 연구적 가치가 있는 패턴을 제시하여 왔다. 그렇다면 음악성과 연주력으로 똘똘뭉친 이 밴드의 콘서트가 지루하지는 않을까? 재미있었던 것은 필자가 1994년 유럽여행 중에 보았던 옐로우자켓의 공연에서 두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모든 관중이 마치 스탠딩 파티라도 하듯, 춤을 추며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확실히 박진감 넘치는 라이브였기는 하지만 춤을 출 만한 음악은 아니었다. 그러나 댄스곡은 댄스곡처럼 만들어야한다는 생각도 고정관념이다. 말을 잘하는 것과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이 다르듯, 옐로우자켓은 하고자 하는 언어를 제약없이 구사하면서도 기묘하게 빚어내는 역동성으로 청중과 호흡하고 있었다. 복잡한 연주패턴과 긴장(tension)으로 춤을 추게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바로 ‘리듬과 재즈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던 옐로우자켓의 본 모습이다.
  

  결성 25주년을 기념한 전 세계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내한했던 2006년 공연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예상은 했었지만 국내에서의 낮은 인지도와 그에따른 홍보의 장애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했던 개인적 소망이 충족되지 못했던 점. 당시 공연장을 찾은 관중들 중 상당수의 좌석은 역시 뮤지션들이 차지했는데 현장에서 어떤 뮤지션은 기획자였던 나에게 “이런 공연을 숨어서 하세요?”라는 우스개 소리를 던졌을 정도로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한가지, 정규 멤버인 밥 민처(색소폰) 대신 에릭 마리엔탈이 출연했다는 점. 에릭 마리엔탈 역시 훌륭한 연주자였지만 확실히 밥 민처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옐로우자켓의 음악적 컬러가 지금과 같은 포스트밥(Post-Bop) 계열로 접근한 시기도 밥 민처가 합세한 1990년 작 <Green House>때부터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감이 어떠한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마련된 두 번째 내한공연에서는 밥 민처를 포함한 옐로우자켓의 정규 라인업 모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룹의 핵인 러셀 페란테, 베이시스트 지미 하슬립과 천재 드러머로 불리우는 마커스 베일러까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하고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다시한번 만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 특히 기타리스트 마이크 스턴을 참여시켜 발표한 최신앨범 <Lifecycle, 2008년 5월> 덕분에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마이크 스턴까지 함께 무대에 오른다고 하니 재즈팬들에게는 모처럼 접하는 뉴스다운 뉴스다.
 

  1981년 데뷔 당시 함께했던 로벤포드(Robben Ford) 이후 옐로우자켓의 앙상블에서 기타리스트가 함께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만약 옐로우자켓에 기타를 더한다면 사방을 둘러봐도 역시 마이크 스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만남은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서로 비슷한 음악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80년대와 90년대를 가로질러 동시대를 달려온 재즈계의 파트너들이 아닌가. 조 자비눌(Joe Zabinul; 70년대 대표적인 퓨젼재즈 그룹 웨더리포트의 피아니스트)의 영향권에 있는 러셀 페란테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사이드맨으로 출발했던 마이크 스턴이기 때문에 이들의 만남은 오히려 늦은 감 마저 있다.

2007년 한 해동안 월드투어를 통해서 호흡을 맞춰온 마이크 스턴과 옐로우자켓. 이번 공연은 아직은 좁기만 한 우리들의 안목을 ‘다양한 사고’로 넓혀줄 진귀한 무대가 될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는다. 

글 : 남무성(재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