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전시를 기획하며 – 세계의 신화와 전설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마치 동화책을 펼치듯 이미지와 함께 상당수의 텍스트들이 전시 공간에 함께 합니다. 이야기 구조인 신화의 기본방식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 서사성이 짙은 참여 작품들의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1섹션을 지나오면 세계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교육공간이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세계에는 다양한 신화가 있음을 소개하고, 공교롭게도 이러한 신화들이 하나의 일관된 유형을 지님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려 합니다. 서로 다른 지역과 시간을 살았던 인류가 유사한 신화를 갖는다는 것은, 심층심리학자인 융이 집단적 무의식의 의미로 사용한 '원형'의 개념에서처럼 하나의 공통된 원형적 무의식이 우리를 엮고 있다는 가설을 설득력 있게 합니다.
신화학자 엘리아데는 융과 유사하지만 '모범형' 또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인식한다는 것은 우주로부터 단절되었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다시금 원형적 직관에 다다르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원래의 통일을 회복하려는 갈망, 즉 전체에 속해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2섹션은 오늘날의 샤먼으로 칭할 수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신화의 의미를 재해석한 공간입니다. 엘리아데는 예술가를 운명을 앞지를 수 있는 사람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창조'를 통해 영원한 시간을 정지하듯이 샤먼도 성소의 예배를 통해 고대의 시간을 환원시키고 정지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드러내어 우리가 현실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화는 오랫동안 조형예술의 가장 큰 소재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대로부터 신화와 직접 연결된 종교적 충동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종교와 예술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구석기 인류에 의해 그려진 <라스코 벽화> 역시 종교적 차원에서 주술을 행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석기 시대의 <스톤헨지> 건립 또한 태양 숭배 의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의 고대 종교는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사상을 기반으로 종종 동물과 결합된 혼성체로 신을 묘사하였습니다.
이런 원시종교와 관련한 모티프들은 그리스와 로마,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잠시 미술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었으나 19세말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시기와 맥을 함께하여 미술 속에 재등장합니다.
원시미술 외에도 미술에서 신화적 요소들을 혼합하고 작품의 주제로 삼는 것을 장려해 온 전통은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신화는 가장 즐겨 다루어지는 주제였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이교로 치부되면서 신화의 인물이 독립된 조각상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드물었으나 그리스 시대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며 명맥이 유지되었습니다.
이처럼 신화 모티프는 신화의 내용을 재현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상징을 함유함으로써 다층적인 의미를 생산하게 되었고, 인본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신화적 주제들이 전면적으로 부활하면서 이러한 성격은 보다 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의 상상력과 감성, 주관을 강조하는 한편 과거로 눈을 돌려 고대 그리스와 중세의 감성으로 회귀하고자 했습니다. 특히나 낭만주의의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상상력은 신화의 특징에 부합하는 것으로 낭만주의 미술에는 다수의 신화나 전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활발히 행해진 고고학과 인류학적 연구들은 서구인들로 하여금 인간의 원시적 심상과 태고의 유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나 상징주의자들은 신화의 내용을 활용해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내면에 침잠하는 신비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반부터 신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제임스 르페이저와 루시앙 레비 브륄, 비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융 등에 의해 인류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신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신화가 시대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고대로부터 신화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주제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신화에 접근하는 태도가 보다 다원화 되었습니다.
신화는 인간의 세계관을 내러티브 속에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가들은 신화의 내러티브 속에 심리학적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해 신화라는 매체를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특히나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고무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각예술에서 신화적 요소는 인간의 삶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오랫동안 다루어왔던 것들입니다. 미술을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거울로 보는 측면을 받아들인다면 신화적 요소는 시각예술의 핵심적인 거론대상이 됩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시기부터는 서사적 구조들이 회복되며 신화적 특성의 작품이 늘어나고 있어 신화 모티브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신화에 대해 논의할 때, 미술은 인간 내면의 무의식의 심층 세계가 시각적 행위로 나타나는 경우가 되며, 이 때문에 신화 모티브 연구는 종교학과 심리학, 그리고 인류학적인 이론을 근거로 미술작품 속의 신화적 요소를 밝히는 것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