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2022-05-14
감정을 잃어버린 채 산다는 것
그날 이후부터 나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화를 내야 할지, 슬퍼 해야 할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다른 감정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 모든 것이 허구로 구성된 꾸며진 것이 아니라면, 진실에 가까워질 수록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성 보다는 분노로, 분노 에서 다시 얼음처럼 차가워진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 표정은 이미 죽은 사람처럼 굳어있다.
일주일동안 시체처럼 누워서 생각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열번을 세어봐도 백번을 세워봐도 내가 잘못한게 없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느 순간 화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괴물이 되어간다.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해버릴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있다.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다. 주변 환경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나 스스로가 결정된다. 내 주위를 돌아보았다. 쓰레기들이 많았다.
빈 과자 봉지, 빈 병, 흐트러진 옷, 그리고 인간들..쓰레기를 버렸다. 그리고 나 자신도 버렸다. 밑바닥 끝까지 내려간다. 더 이상 내려갈 때가 없을 때까지..그리고 다시 주위를 돌아보았다. 과거의 기억과 추억은 잊고 다시 리셋한다. 'why'를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유를 물어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얻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how' 이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다. 되돌이킬 수 없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방법을 생각한다.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알렉시티미아라는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에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쁨, 슬픔, 분노, 화..감정을 나타내야 하는 이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화를 낼까, 또는 저 사람은 무시당하고 있는데 왜 화를 내지 않지..각자의 상황과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윤재의 친구 곤이는 분노로 가득찬 인물이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찾지 않았다는 배신감, 아빠가 나를 처음 봤을때의 낯설음, 소년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주위 환경이 그를 만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핑계로 들린다. 곤이는 외로운 것이다. 갑작스런 아빠의 등장과 엄마의 죽음, 그리고 윤재까지..곤이는 윤재가 부럽다. 윤재 너는 엄마가 있었지만, 나는 엄마가 없었어.
처음에는 곤이가 윤재를 괴롭혔다. 마치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으로. 하지만 곤이는 윤재를 다시 보았다. 윤재는 비록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지만, 솔직한 친구라는 것을..윤재는 곤이에게 맞고 있다. 윤재는 맞고 있으면서도 마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해본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채 곤이를 다시 본다. 윤재는 곤이의 화를 본것이 아닌 곤이의 외로움을 본다. 너도 나처럼 외롭구나.
윤재는 곤이에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곤이는 윤재에게 분노보다 나를 도와달라고 외친다. 열여섯 번째 생일날, 엄마와 할머니가 괴한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윤재에서 지금은 곤이를 위해 손을 내민다.
너는 나의 친구야.
<아몬드> 는 고양문화재단의 소극장 기획 시리즈를 표방하는 '2022 새라새 ON 시리즈'의 시작으로 연극 공연이다. 원작은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손원평 작가의 소설로, 태어나면서부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소년 윤재가 뜻밖의 사고로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 후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이야기를 통해 10대 청소년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2017년 출간 이후 누적 판매 45만 부, 미국 아마존 ‘Best Book of May 2020’ 선정, 아시아권 최초 ‘2020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수상 등의 화려한 이력과 함께 전 세계 15개국에 번역된 베스트셀러다.
스토리 구성에서 윤재는 알렉시티미아라는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고 있다.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윤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 특히 공포심을 느끼지 못한다. 여섯 살 때,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서도 옆 가게에 들어가 무표정하고 무감정하게 "사람이 죽을지도 몰라요." 하고 말했을 뿐,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기본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윤재에게 감정을 가르치기 위해 애를 쓴다. 덕분에 윤재는 초등학교에 가서는 특별히 튀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열여섯 살 생일 날, 사건이 일어났다. 가족과 외식을 하러 갔다가 할머니께서 괴한의 칼에 찔리고 엄마는 망치로 머리를 맞는 사고를 당하신다. 이 사고로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윤재는 교수 아저씨에게 자신의 아들처럼 행동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리고 며칠 후 윤재는 교수 아저씨의 진짜 아들인 곤이를 만난다. 서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둘, 윤재와 자꾸만 부딪히는 문제아 곤이, 윤재는 곤이에게, 곤이는 윤재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윤재는 곤이를 친구라고 생각하여 돕는다. 자신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이용해서 친구를 지킨다. 아무 감정 없이 한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 곤이가 슬퍼하고 고마워하는 것을 보며 윤재도 진짜 감정을 찾기 시작한다.
윤재 역의 박성환 배우와 곤이 역의 김해솔 배우 연기가 돋보인다. 다르다고 생각한 이 둘은 실상 닮아있다. 외로운 감정..그리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까지..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그들은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각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각자가 작가가 된 윤재로서 윤재의 심리상태를 나래이션으로 설명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어렵다. 심리상태가 불안하니 최근에는 정신적인 치료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윤재와 곤이가 아닌 나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말에 한번이라도 귀 기울인적 있는지..없다면 미안하다.
박*련2022-05-14
각박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로 한 내용
평소 책 읽기를 게을리 하는 내가, 단숨에 읽어낸 소설 <아몬드>. 소설 아몬드는 완독 후 울컥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적적해진다. 고통과 공감의 능력을 깨우치게 하는 내용을 다루는 아몬드! 각박한 세상에 살면서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로 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책 속에서 봐오던 내용들을 과연 짧은 연극 한 편에 어떻게 녹여냈을 지 매우 궁금했는데, 핵심이 되는 주요 장면 모두를 배우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표정연기, 절제된 무대연출, 대사 등으로 잘 풀어낸 듯 했다. 원작과 연극을 비교해가며 관람하는 재미도 더해져 상당히 흥미로웠다. 특히, 모든 배우들이 러닝타임 내내 몰입력있는 연기를 보여주어 더욱 인상 깊었다. 다만, 아몬드라는 연극은 각자가 맡은 배역에 대해 1인1역의 연기를 하는- 즉,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연극의 느낌이라기 보다는, 모든 배우들이 주인공 윤재의 시점이 되어 그를 서술하는 낭독극의 성격이 다소 강한 듯 했다. 소설을 미리 읽고 오지 않은 관객이라면 각색된 연출 부분과 스토리라인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파악하고 이해하는데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을 듯 했지만, 관람 전 두어차례 책을 정독한 덕에 집중력있게 극 자체를 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아람누리 극장에서 <아몬드>와 같은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들을 많이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수2022-05-22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아몬드를 이미 책으로 여러 번 읽었어서, 연극 아몬드도 되게 기대했고 원작 소설에 조금 각색해서 다른 이야기를 펼치다 보니 연극을 관람하는 내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되게 흥미로웠다. 일단 모든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 하셔서 몰입이 잘 되었다. 상황에 맞춰서 배우들이 자유자재로 표정연기를 하시는데, 보면서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윤재의 서사를 비롯해, 곤이의 서사와 도라의 이야기도 잠깐씩 나왔는데, 일단 윤재의 서사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아니지만, 감정 표현이 많이 서툰 사람들은 종종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감정 표현이 서툰 것 뿐이지,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감정 표현이 서툴다고, 감정이 매말랐다고 거리를 두는 경우는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우리 사회 생활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근데 우리가 뭐라고 비하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해해주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곤이도 바르게 살아가진 않지만, 그 내면 속에 있었던 숨겨진 속사정 때문에 곤이라는 아이의 성격이, 다른 사람을 못 믿는 것 같고, 그 자체를 바꿔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안타까웠다. 누구보다 그 안에 있을 상처가 엄청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연극을 보면서 느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폭력인 것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면죄부가 되진 않을 것이다. 소설을 미리 보고 와야 연극 내용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도 끝나고 나왔을 때,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연극 아몬드를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