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의 의미展
미술이 묻고 미술이 답하는
음식과 문화의 의미
오늘날 일상 중의 일상인 ‘식사’의 의미가 오늘날 새삼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우리의 오감을 흔들어 깨우는 데 음식만큼 강렬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본질적인 감각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진솔한 감각은 문명의 허상을 관통하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10월 15일부터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식사의 의미展은 8명의 작가들이 음식 주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각자의 식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음식과 문화는 우리를 의미 있는 성찰에 잠기게 할 것이다.
글_ 김언정(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
이유정_ 「바벨탑 1」 캔버스에 아크릴릭, 91×116cm, 2007
음식과 예술이 갖는 공통의 힘
우리는 깨어있는 매순간 여러 가지 감각활동을 한다. 그 중에서도 식사에 동반되는 감각은 가장 다양하고 활발하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재료와 요리방식은 식욕의 충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개체의 보존과 종의 존속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발달하고 변화해 왔다. 요리는 자연으로부터 얻어낸 재료에 인간의 문화를 담아내는 행위이며, 때문에 지역마다 나라마다 특색 있는 음식문화가 형성된다. 또 다양한 형태의 혼합과 변형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현상을 야기하기도 한다.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에 따르면, 식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를 부양하고, 사랑의 환희와 우정의 신뢰를 증대시키며, 증오를 무력하게 만들고, 사업을 용이하게 하며, 삶의 짧은 여정 동안 다른 모든 쾌락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피곤을 풀어주며, 피로를 동반하지 않는 단 하나의 쾌락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김기라_ 「버드와이저 맥주가 있는 정물」, 캔버스에 유채, 97×145.5cm, 2007
김시하_ 「Twinkle Time」, 혼합재료, 244×240×180cm, 2008
사실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체 내부에 끊임없는 물질적 손실을 초래한다. 이때 적절한 식욕과 식사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신체는 곧 사용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식욕은 먹고자 하는 욕구를 알려주는 최초의 인상으로 이해되는데, 이 다행스러운 욕구를 통해 우리는 생명을 연장하고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식사를 하는 동안 먹는 즐거움을 재충전한다. 본능에서 나오는 특별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식사를 통해 생존을 연장하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삶을 연장하기 위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가는 세상은 우리에게 여러 방면으로 경직과 피로를 준다. 만일 여기서 예술이 자정과 치유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상상하기도 싫은 험악한 꼴을 서로 보게 될 것이다.
식사의 의미展은 이렇게 음식과 예술이 갖는 공통의 힘을 토대로 다시 인간과 문화를 말하고자 한다. 세상의 온갖 문화를 하나로 정의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하듯 음식에 대한 단일한 정의는 불필요하다. 8명의 참여 작가들은 음식과 관련된 자전적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럼에도 전시가 하나로 아울러지는 느낌이 든다면, 식사의 즐거움처럼 그들의 작업을 통해 삶의 본질적 의미를 발견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살짝 들여다보자.
8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식사의 의미
이유정에게 넘쳐나는 식욕은 삶의 전반에 깔린 욕망의 문제와 연결된다. ‘바벨탑’ 연작의 일부인 「팥빙수」는 녹아 없어질 것 같은 불안한 이미지를 담는데, 인간의 덧없는 욕망과 그 대가의 함수관계를 달팽이의 집에 비유한다. 지나치면 무너져버리는 아슬아슬한 공든 탑을 형상화하고 있다. 한없이 약한 미물로 보이는 달팽이가 아등바등 화려한 욕망의 똬리를 틀어 올리는 모습은 간절한 염원이 종종 하찮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욕망 과잉 시대’의 만화경을 보여주는 데 안성맞춤이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한 윤리적 경고가 빚어내는 충돌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양면일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다소 불안한 원색의 화면은 단편적이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김계현은 다양한 자연물로 요리를 완성하는 것처럼, 결합하고 조립함으로써 창조적 형태를 만들어 낸다. 그는 작품이 지녀야 할 영구적 보존의 특성에 구애받지 않고,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며 시대적 메커니즘을 반영한다. 조립아트의 간편하고 유쾌한 제작방식은 팝아트적인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한 걸음 더 앞서 있는데, 매일 한 번 이상 먹어야 하고 평생 반복해야 하는 식사가 그 즐거움을 잃지 않듯 그의 작품 역시 조립과 와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바바라 카뱅_ 「MEAL932」, 혼합재료, 244×240×180cm, 2008
김영섭은 끊임없는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음향설치작업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하얀 식탁보가 덮인 테이블에 그릇 모양의 스피커와 홈쇼핑의 선정적인 광고가 요리를 대신한다. 식탁 위에 차려진 소리의 식사는 미각을 대신하는 청각적 만찬인 셈이다. 감미롭게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소리들은 식욕이 입안에 침을 고우고 영양기관 전체의 흥분을 유도하듯, 물질을 향한 돌진을 부추긴다. 그러나 그 만찬은 생명을 키우는 대신 공허함을 안고 있다. 소리에 형태가 없는 것은 식탁 위에 충족이 없다는 추론을 낳는데, 실제 전시공간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만나게 된다. 김영섭은 유학 시절 언어가 주는 단절과 고립의 파장이 소리 작업에 특별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스케치하는 도구로 소리를 사용하는데, 일상적인 소음은 때론 지배적인 억압의 기호가 되고 때론 무의식적인 즐거움이 되어 획일화된 문화와 욕망을 들려준다.
김시하의 이야기는 식탁을 둘러싼 흔적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식사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관계를 나누게 한다. 사람들이 떠난 식탁에는 그 흔적들이 남는다. 현재 베이징에서 작업하고 있는 김시하는 아시아 현대 예술의 중심지에서 경험한 인상들을 이러한 흔적으로 전화하여 표현한다. 화려한 음식들은 유혹적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날카로운 유리 파편에 상처를 입게 된다. 그 달콤함으로는 위를 채울 수도, 또 다른 충족을 얻을 수도 없다. 삶에 대한 의지와도 같은 욕망, 그리고 그와 같은 크기만큼의 좌절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축이며, 김시하는 이러한 경험을 강렬한 스토리와 설치 방식으로 전달한다.
김기라의 정물화는 다국적 자본과 대량소비의 문제를 다룬다. 유학 시절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했던 그에게는 먹거리에 소홀했던 젊은 날에 대한 초상이자, 무의식적으로 휩쓸려야 했던 거대담론에 대한 회상이다. 그의 작품은 상징이나 은유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대상과 맞닥뜨리는 것이 특징이다. 1950년대에 맥도날드가 첫선을 보인 이래 패스트푸드는 표준화와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일정한 품질 유지가 가능해졌고, 지구촌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팝아트 또한 미국 문화를 지배하던 물질만능주의를 거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로 삼았다. 김기라의 작품은 그러한 팝적인 인상을 갖고 있다. 상업성에 기초한 기법과 이미지들의 조형적 이끌림은 그의 작품이 지닌 큰 매력이다. 그러나 김기라는 이를 활용하면서도 서구 중심의 소비문화가 제시한 표준화와 대량생산에 거부의 뜻을 확연히 나타내며 반전을 꾀한다.
송지혜_ 「Feeling Sorry」, 캔버스에 아크릴릭, 80×50cm, 2008
한윤정은 유학 시절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경험한 것들을 소리, 그리고 음식으로 확장하며 작품의 중요한 소재이자 표현방식으로 끌어낸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음식은 나에게는 삶, 또는 우주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감정과 교류하는 음식에 특별함을 담는다. 사물과 조응하는 그의 시선은 집약된 드로잉으로 부엌, 그리고 음식, 자신의 의식을 모은다. 드로잉이 강점인 그에게 색채는 덤이다. 핑크색 바탕에 그려진 국수 한 입은 곧 다정하면서도 감미로운 생명의 한 입이 된다.
스위스 작가 바바라 카뱅(Barbara Caveng)의 「마지막 식사」는 사형 집행 8시간 전 사형수들이 먹는 마지막 식사에 대한 사진이다. 고대로부터의 관습인 처형 전의 식사는 사람들에게 마법적인 관심을 끌어낸다. 이는 죽은 자의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기원으로 하는데, 사형수들을 부드럽게 다루어 불안감이나 복수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용서받아야 하며, 그래야만 그들의 잔인한 기분을 잠재울 수 있다. 작가는 작품 제작을 위해 사형수들의 자료를 분석하던 중 마지막 식사의 주문서를 보았다. 레스토랑의 주문서 같기도 했던 그 자료를 보며 작가는 “왜 먹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 먹는가? 죽기 직전의 순간에 음식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의문을 가졌고, 관객들도 같은 의문을 갖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사형제도에 대한 정치적 진술로 다루지 않는다. 또 관람객에게 정해진 방식의 사고(思考)를 요구하거나 도덕적 판단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단지 쇼크와 매혹, 혐오와 동정이라는 모순적인 감정들 사이에서 착각과 진동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송지혜는 제사나 명절 같은 친근한 모임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현상을 그린다. 특별한 날 가까운 이들이 모여 함께 나누는 식사는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공통의 주제를 나누는 데 대한 행복감을 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행복감이 요즘 점점 약해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고, 무관심을 친숙하게 느낀다. 송지혜의 작품에는 제사상을 중심으로 모여들어야 할 존재들이 보이지 않는데 그 상실과 부재는 굶주림처럼 우리를 시들게 하는 한편, 따뜻한 만남의 욕구를 식욕처럼 불러일으킨다. 예에 어긋나지 않게 고루 갖추어진 제사상 둘레의 고독과 혼자만의 앙상한 식사가 덩그러니 남은 흔적은, 사람들이 서로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짧은 생을 서로에게 의지해야 함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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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의미展
전시기간｜10.15(목)~12.27(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관람시간｜화,수,목,일 10:00am~6:00pm, 금,토 10:00am~8:00pm
입 장 료｜일반 3천원, 19세 미만 2천원, 20인 이상 단체 1천원
예매,문의｜(031)960-0180 / www.artg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