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로와 세잔, 예술과 삶을 공유하다
"LA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현대미술의 창시: 세잔과 피사로’전(Pioneering Modern Painting: Cezanne and Pissarro 1865-1885)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두 인상파 거장들이 절친하게
지냈던 시기 서로의 작품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중점을 둔 기획전이다.
카미유 피사로의 증손자로 뉴욕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인 요아킴 피사로가 기획한 이번
전시회는 지난 6월 뉴욕에서 첫 선을 보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올 1월말까지 LA카운티 뮤지엄
전시에 이어 파리 오르세 박물관(the Musee D’Orsay in Paris)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2006년 1월 19일 기사 중 일부 발췌 <인상파 거장 ‘세잔과 피사로’ 전시회> -
카미유 피사로, <자화상(Self-Portrait)>1873) 폴 세잔, <자화상(Self-Portrait)>(1873-76)
위의 기사처럼, 카미유 피사로와 폴 세잔은 서로간의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예술적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은 1861년 프랑스에서 처음 만나 1865년부터 1885년까지 퐁투와즈와 오베르 등지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고, 당대에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피사로와 세잔의 자화상은 보는이로 하여금 당시 두 화가의 모습을 짐작케 하면서, 이들이 사용한 기법상 공통점과 차이점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해준다.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 출생인 세잔은 1859년 아버지의 권유로 엑상프로방스의 법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861년에 에밀 졸라에 의해 파리의 아카데미 스위스로 학교를 옮겼다. 여기에서 그는 피사로를 알게 되고, 후에 인상파화가들과 인연을 맺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세잔은 한때 미술학교 시험에 실패하여 실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1872년 퐁투와즈에서 헤어졌던 피사로와 만나 다시 그림에 전념하기 시작하고, 이후부터 인상파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1870~71)
폴 세잔, <눈 내린 에스타크 Snow at Estaque>
세잔의 인상파 시기(1870~78)
1870년 7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터지자 세잔은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로 갔다. 이때 그는 1년 전부터 사귄 젊은 여인 마리 오르탕스 피케를 데리고 갔으며 1886년 마침내 그녀와 결혼했다. 세잔 부부는 마르세유에서 멀지 않은 프랑스 남부 해안의 작은 마을인 에스타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묘사하는 동시에 자연에서 받는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린 2점의 풍경화 〈눈 내린 에스타크 Snow at Estaque〉(1870~71)와 〈포도주 시장 The Wine Market〉(1872)을 보면, 초기 양식의 구도로 되어 있으나 이미 더 세련되어 있고 빛의 사실적 표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폴 세잔, <목맨 사람의 집 The Suicide's House>(1872)
피사로와 세잔, 퐁투와즈를 그리다
이후 1872년 1월 세잔과 마리 오르탕스 사이에 아들 폴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잔은 피사로의 초대를 받아 식구들을 데리고 우아즈 강 유역에 있는 퐁투와즈에 방문하게 된다.
퐁투와즈와 근처의 오베르라는 도시에서 그는 피사로에게 인상주의 기법 및 이론을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했는데, 흥미롭게도 피사로는 그의 까다로운 성격을 참아가며 끈기있게 가르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풍경>(1872) Le Verger, côte Saint-Denis, à Pontoise )>(1877)
폴 세잔, <퐁투와즈 근처 쿨뢰브르의 풍차(Le Moulin de la Couleuvre à Pontoise)>(1881)
위의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 이들이 바라본 퐁투와즈의 풍경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보여진다. 피사로가 그린 퐁투와즈는 바르비죵파의 그림처럼 땅과 하늘, 풀과 나무, 구름이 자연을 이루는 일부임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에 비해 세잔은 피사로보다 좀 더 밝은 색채를 사용하며 퐁투와즈의 풍경을 잔잔하고도 밝은 분위기로 표현했다.
폴 세잔, <퐁투와즈에 있는 생-드니 언덕길, 과수원(
폴 세잔, <에스타크(L'Estaque)>(ca.1888)
그 누구보다 세잔은 나무의 형태에 집중한 듯 보인다. 그는 평생동안 '산'을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한데, 이 작품에서도 생-드니 언덕길은 나무 줄기들의 거친 형태와 그림자 드리운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화가의 눈으로 바라본 직감과 함께 묘사되어 있다.
폴 세잔, <집과 나무들(Maison et arbes)>(1890-94)
이들은 1874년에 함께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당대에 급진적이라고 여겨졌던 기법들을 시도하게 된다. 이때부터 세잔은 거의 전적으로 풍경화와 정물화에 몰두했으며 얼마 뒤에는 초상화에 몰두했다. 피사로는 세잔에게 밝은 색을 사용할 것을 권했으며 인상파의 특징인 단편적인 색채와 짧은 붓질을 사용할 때의 장점들을 가르쳤는데, 세잔은 후기 작품에서 그러한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피사로의 영향 하에서도 자신만의 시각을 잃지 않았다. 이에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주된 관심이었던 대상에서 발산되는 빛, 그것이 나타나는 실제 모습보다는 대상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에 관심을 기울였다.
1888년작 <에스타크>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집과 나무들>은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라고 견해를 밝혔던 세잔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기에 그는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하여 화면에 새로 구축해 나가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카미유 피사로, <창밖의 풍경, 에라니 쉬르 앱트>(1888)
이러한 사실은 곧 세잔의 작품이 입체주의와 연결되는 선상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안정적이고 견고하며 건축적인 선들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비슷한 시기 피사로의 작품들, 예를 들어 <창밖의 풍경, 에라니 쉬르 앱트>에서 보이는 흩뿌려놓은 듯한 색점들의 조화로운 느낌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피사로(왼쪽)와 세잔(오른쪽)이 함께 한 모습
이처럼 각자의 그림 스타일이 달랐지만,
세잔보다 연배가 높은 피사로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인상주의 기법을 전수하였고,
이에 세잔은 ‘위대하고 겸손한 피사로’라 부르며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작품에서도 전해지는 끈끈한 유대감은 미술의 역사, 즉 미술사에서도 연관관계를 찾을 수 있다. 이에 우리는 피사로를 인상파의 아버지로,
세잔을 후기 인상파의 탄생을 이끈 현대회화의 선구자로 기록하고,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