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야기

구노는 파리 음악원에서 알레비(Fromental Halévy)를 사사하고 로마 대상을 수상한 후, 이탈리아로 가서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을 공부하였다. 처음에는 교회 음악에 뜻을 두었으나, 슈만과 베를리오즈 등을 사귀고는 세속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다. 성(聖)과 속(俗)의 세계 사이에서 괴리와 갈등을 체험한 구노는 인간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문제를 오페라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결코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양식을 따르지 않고 프랑스만의 오페라 전통을 세우면서! 아름다운 선율 속에 절제와 균형을 잃지 않고!

구노의 <파우스트>는 괴테의 동명 희곡 중 ‘파우스트와 마르그리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쥘 바르비에와 미셸 카레가 만든 대본에 작곡을 한 것이다. 노(老) 철학자 파우스트박사(테너)는 허무한 인생에 비애를 느끼면서 음독자살을 꾀한다. 이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베이스)가 나타나 재산, 명예, 권력 중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마치 예수가 광야에서 악마에게 유혹받는 장면과 비슷하다) 파우스트가 원한 것은 재산, 명예, 권력 등을 다 가질 수 있는 청춘(젊음)이었다. 계약의 조건은 지상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저승에서는 파우스트가 상대의 종이 된다는 것. 그리고 회춘한 파우스트는 시골 처녀 마르그리트(소프라노)를 희롱하여 아이를 갖게 한다. 발랑탱(마르그리트의 오빠, 바리톤)도 시벨(마르그리트를 사랑하는 학생, 바지 역할 Trouser Role; 여성 가수에 의한 남자 역할, 메조소프라노)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 전쟁터에서 막 돌아온 발랑탱은 파우스트와의 결투 중에 죽고, 슬픔을 못 이긴 마르그리트는 광란 상태에서 어린아이를 죽인다. 감옥의 최후 장면에서 마르그리트가 숨을 거둘 때, 악마는 (마르그리트에게) ‘저주를!’ 천사는 ‘구원을!’ 외친다.

이 작품에는 두 인물의 전형(典型) 대비가 확연하다. ▶파우스트: 나약한 육체 속에 깃든 고매한 정신의 착란. ▶마르그리트: 유약한 육체 속에 담긴 순결한 정신의 분열. 결국 인간은 육체를 지배(통제)할 수 없기에 욕정(유혹)에 희생된다. 선과 악의 심판 잣대는 다분히 이성의 산물일 뿐. 심판과 구원의 경계는 예측 불가능. 용서와 자비의 손길을 믿고 비천한 영혼을 구원해 주기를 호소(기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추천 CD는 앙드레 클뤼탕스 판(1958년, EMI, 사진1)을 적극 권한다.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마르그리리트)와 니콜라이 게다(파우스트)의 매력은 미성(美聲)을 넘어서는 침혹(沈惑)에 있다. 보리스 크리스토프(메피스토펠레스)의 귀기(鬼氣)는 섬쩍지근한 여운이 있다. 이 모든 공로가 구노의 음악 세계를 직시하는 지휘자 클뤼탕스의 관감(觀感)에서 비롯되었다.

추천 DVD는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의 코벤트가든 실황 판(2003년, EMI, 한글자막, 사진2)을 꼽는다. 로베르토 알라냐(파우스트)와 브린 터펠(파우스트)의 강유겸전(剛柔兼全)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여유까지 발휘한다. 다만 안젤라 게오르규(마르그리트)의 장기인 역(役) 몰입이 때로 과다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사이먼 킨리사이드(발랑탱)와 소피 코흐(시벨)의 조연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발랑탱의 제2막의 카바티나 <출발을 앞두고 Avant de quitter ces lieux>와 시벨의 제3막의 ‘꽃의 노래’ 아리아 <꽃들아, 내 소원을 전해다오 Faites lui mes aveux>는 주연만큼 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흥미롭고 효과 있는 발레와 짧은 동선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무대미술은 높은 수준의 오페라 미학을 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