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야기

<가면무도회>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1746∼1792)의 가면무도회 암살사건을 소재로 한다. 구스타프 3세는 왕권강화에 힘쓴 계몽군주로 귀족들과 알력이 심했는데, 귀족들의 사주로 자신의 전 경호원에게 저격당했다. 베르디는 1857년 늦가을부터 2개월 반 동안 아주 빠른 속도로 작곡을 마쳤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치하였기에, 검열 당국은 실화를 다룬 이 공연이 독립 운동을 촉발할까봐 저어하였다. 결국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를 보스턴의 리카르도 총독으로 바꿈으로써 겨우 초연(1859, 로마 아폴로 극장)이 가능했다. 그 후 ‘보스턴 판’과 ‘스톡홀름 판’의 두 판본이 생겼는데, 가사(이름과 지명 등)의 차이만 좀 있다.

<가면무도회>의 인기 비결은 치정(癡情)을 초월한 순애(殉愛)에 있다.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순애 純愛)인 것만 아니라 목숨까지 바치는 사랑(순애 殉愛)이기에 감동이 크고 깊다. 보통 오페라와 달리(아주 드물게!) 남자 주인공(그것도 왕!)의 희생으로 구원의 결말을 맺기에 멍멍한 충격마저 느껴진다.

스웨덴의 왕 리카르도(보스턴 판은 구스타보 총독, 테너)는 자신을 끔찍이 위하는 측근(레나토, 바리톤)의 아내(아멜리아, 소프라노)와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에 빠진다. 그 열병은 에로스(Eros)의 상상을 넘나들기에 늘 불안하다. 적의를 품은 자가 이를 삐딱하게 지켜본다. 아무리 신비의 베일이라도 무시무시한 오해의 손길이 미치면 허무하게 벗겨진다. 작은 배려도 큰 불륜으로 드러난다. 아내의 외도를 확신한 남편은 적대의 선봉에 서고, 복수의 비수를 품는다. 왕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을 위해 가면무도회를 연다. 그녀가 음모의 위험을 경고하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이별의 선물을 준비한다. 그녀의 남편은 가면무도회에서 왕의 등에 칼을 꼽는다. 왕은 결백과 용서를 선언하는 마지막 숨을 내쉬고…….

우리가 그토록 결핍에 몸서리치는 사랑은 플라토닉이든, 에로틱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빗물처럼 침투하고, 바람처럼 방황하며, 안개처럼 모호하고, 불꽃처럼 위험하다. 오페라는 그런 사랑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기에 지독히 아름답다. 치명적인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추천 CD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판(보스턴 판, 1980년, DG, 사진1)을 권한다. 아바도의 간단명료(簡單明瞭)함이 처음에는 귀에 거슬리지만, 클라이맥스(Climax)로 치달아 올라갈수록 지고지순(至高至純)함으로 느껴진다. 플라시도 도밍고(리카르도)와 카티아 리차렐리(아멜리아)의 호흡은 일품이다. 레나토 브루손(레나토)은 간교함에 쉽게 넘어가는 우직함의 큰 비극을 두텁고 거칠게 잘 표현한다. 에디타 그루베로바(오스카르)와 엘레나 오브라초바(울리카)의 배역 소화 또한 최고다.

추천 DVD는 제임스 러바인 지휘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실황 판(스톡홀름 판, 1991년, DG, 사진2)을 권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구스타보)와 에이프릴 밀로(아멜리아)는 열광의 도가니를 절절 끓게 한다. 레오 누치(레나토)의 충정(忠情)과 비정(非情)을 오가는 리얼리티도 명연이다. 해롤린 블랙웰(오스카르)과 플로렌스 퀴바(울리카)의 배역도 무난하다. 러바인의 지휘는 격정과 고뇌를 박력 있게 연주했다. 무대미술은 지나치게 어두운 색채 위주로 꾸며진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