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의 미술이야기 No.2. 일요일의 이른 아침
에드워드 호퍼, <일요일 이른 아침 Early Sunday Morning>(1930), 캔버스에 유화, 88.9x152.4cm
뉴욕 휘트니 미술관,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기금으로 구입
이른 아침, 고요한 거리.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2층짜리 건물과 소화전, 이발소의 표식뿐이다. 재현에 가까울 정도로 불필요한 왜곡 혹은 과장을 자제한 담담한 풍경. 마치 사진처럼 완벽하게 수평구도를 이루고 있는 하늘과 건물, 땅과 그림자 중 어디서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아무도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 것 같지 않을, 혹은 아무도 가게 문을 열지 않을 것 같은 길. 이것이 작가 에드워드 호퍼가 재현한 어느 일요일의 풍경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작가로 손꼽히는 에드워드 호퍼 (1882~1967). 흔히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설명하며 고독, 단절, 외로움 등의 수식을 붙이곤 한다. 실제로 그의 그림을 마주하면 인물의 유무와 상관없이 공백과 쓸쓸함을 느낀다. 자잘한 감정이나 정서의 개입은 배제하고 최소한의 현실만 표현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화가라기 보단 기록사진작가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쩌면 그는 휴일을 맞이한 텅 빈 도시라는 공간을 통해 그림을 그렸을 당시 경제대공황이라는, 1930년 미국의 상황을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무심하게 그려낸 찰나의 모습, 조용한 가게 앞의 풍경에서 그는 무기력한 사회의 모습을 조용히 재현했고,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드라마틱한 적막함을 연출했으며, 소외와 단절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호퍼의 그림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시대와 세대를 아우른 보편적인 도시-현대인의 감정과 건조한 현실을 풍경으로 드러내며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오는 6월 25일부터 10월 17일까지 스위스 로잔의 엘미타쥬 미술관(Fondation de l’Hermitage) 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마음만이라도 슬쩍 로잔으로 향해봐야겠다.
(고양문화재단 미술관 손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