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의 미술이야기 No.3] 르네 마그리트 - 인간의 조건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 캔버스에 유채, 미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고대 그리스에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라는 유명한 두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이들은 그림으로 대결을 펼치기로 했고, 결전의 날이 되었다. 먼저 제욱시스가 자신의 그림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벗기자 포도넝쿨 그림이 드러났는데, 그게 얼마나 실물 같았던지 날아가던 새가 진짜 포도인 줄 알고 그림에 머리를 박을 정도였다. 이제 파라시오스의 차례였다. “자, 이제 자네 그림의 베일을 벗겨보게.” 의기양양해진 제욱시스가 말했다. 그러자 파라시오스가 말했다. “제욱시스 자네가 보고 있는 그 베일이 바로 내가 그린 그림이라네.” 결국 제욱시스는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파라시오스는 새의 눈을 속인 화가마저도 속인 화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물을 묘사하는 뛰어난 재주 외에도 파라시오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선택한 그림의 소재가 베일이었다는 점에 있다. 무대의 막이나 커튼을 보면 우리는 그 속에 무언가 감추어져 있을 거라는 들뜬 기대를 하면서 그 막을 들추어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힌다. 파라시오스는 제욱시스를 속이기 위해 아마도 이러한 욕망의 기제를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보고 있는 이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이다. 마그리트는 캔버스에 의해 가려진 창밖 풍경을 정확하게 캔버스 위에 묘사함으로써 창밖의 풍경을 방의 내부로 옮겨 놓았다. 관람객의 눈으로 보자면 캔버스에 묘사된 나무는 방의 내부에 있지만, 사실 그 나무는 관람객의 마음 속에서 보자면 방의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림 속의 또 다른 그림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재현해낸 것일 뿐이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이와 같다고 한다. 가려진 실재를 보려는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욕망 때문이다.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속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지만, 이 때문에 불쾌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묘한 즐거움에 빠져든다.
마그리트의 이 그림은 베일에 가려진 실재적인 것을 베일의 표면 위로 옮겨 놓음으로써 감추어진 세상의 진실을 보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을 적절하게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작은 그림이 놓인 방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 조차도 여전히 하나의 그림일 뿐이라는 사실. 그래서인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진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기대로 인해 우리의 욕망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시달리나 보다.
(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 박유진)